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 4~11일, 정조의 8일간 화성행행 현대적으로 재현
화성행궁·행궁야화 등 한복 착용 혜택, 역사·공연·관광 하나로 연결
[이코노미세계] 가을밤, 한복을 차려입고 화성행궁 신풍루를 지나면 시간이 2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을 찾았던 1795년의 이야기가 궁궐 곳곳에서 음악과 춤, 빛으로 되살아난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현대의 미디어 기술로 다시 태어난 수원화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연무대에서는 조선시대 야간 군사훈련을 모티브로 한 대규모 공연이 펼쳐진다.
올가을 수원특례시가 준비한 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의 모습이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는 단순히 역사적 장면을 재현해 보여주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시민과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역사적 공간 안으로 직접 들어가 정조시대의 이야기를 경험하도록 하는 ‘참여형 역사문화축제’로 영역을 넓힌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도 자신의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특별한 축제 관람법을 제안했다. “올해는 한복을 입고 조금 더 특별하게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이 시장은 축제 기간 한복을 입은 방문객이 화성행궁에 무료로 입장하고, 올해 처음 선보이는 야간 실경 미디어 퍼포먼스 ‘행궁야화’를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한복이 없는 관광객을 위해 행궁광장에서는 유료 한복 대여 프로그램인 ‘한복마실’도 운영한다.
이 시장은 “올가을, 고운 한복 차림으로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거닐어보세요. 인생샷과 특별한 추억은 덤입니다”라고 했다.
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는 10월 4일부터 11일까지 8일 동안 행궁광장과 화성행궁, 연무대, 방화수류정·용연, 전통문화관 등 수원화성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새빛홍민’이다. 수원의 정책 브랜드인 ‘새빛’과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의미하는 ‘홍민’을 결합했다. 정조의 역사와 철학을 오늘날 시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 풀어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올해는 수원화성 성곽 내부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행궁광장이나 화성행궁 등 일부 공간에 행사를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연무대와 용연, 전통문화관, 성안마을 골목까지 축제 공간을 확장했다.
축제 기간도 8일이다. 이는 1795년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진행했던 8일간의 화성행행(華城行幸)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공연과 전시, 체험,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 30여 개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수원화성이라는 거대한 역사문화유산 자체를 하나의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올해 눈길을 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한복이다. 수원시는 축제 기간인 4일부터 11일까지 행궁광장에서 전통복식 체험 프로그램 ‘수원화성 한복마실’을 운영한다.
한복마실 체험관에서 원하는 한복을 선택하면 진행요원이 환복과 액세서리 착용 등을 돕는다. 현장 접수 방식이며 대여료는 2시간 기준 1인 2만5000원이다.
한복은 단순한 의상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한복을 입고 축제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화성행궁 무료입장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역사 공간과 공연 콘텐츠를 하나로 연결한다.
한복마실에서 한복을 빌린 방문객에게는 7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주제공연 ‘야조’ 관람권도 하루 50매씩 선착순 제공된다. 한복을 착용한 시민은 화성행궁 무료입장과 함께 ‘행궁야화’,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등 야간 프로그램을 연계해 즐길 수 있다.
관람객이 한복을 입는 순간 축제를 구경하는 외부 관람객에서 축제 풍경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역사문화축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이 ‘몰입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수원화성이라는 실제 역사 공간에 한복과 공연, 미디어 기술을 결합해 관광객이 조선시대 수원을 직접 걷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시간여행_그날 행궁야화’는 이 같은 변화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인 공연처럼 관객이 객석에 앉아 하나의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다.
관람객이 화성행궁 곳곳을 직접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동형 야간 몰입 콘텐츠’다. 우화관에서 시작해 화령전과 낙남헌, 봉수당, 유여택으로 이어지는 화성행궁 내 5개 전각이 각각 하나의 무대가 된다.
독무와 전통악기 연주, 무용, 소리 등이 이어지고 각각의 공연을 따라가다 보면 정조대왕의 꿈과 상처, 효심과 애민정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된다. 역사적 건축물을 단순히 바라보는 관광에서 벗어나 건물과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공연으로 경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문화유산과 야간관광 콘텐츠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낮 시간 문화유산 관람에 집중됐던 기존 관광 패턴을 밤까지 연장하면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에서는 또 다른 밤이 펼쳐진다. 수상 퍼포먼스 ‘선유몽’이다. 빛과 물, 음악, 수원화성의 경관을 결합해 관람객이 정조대왕과 함께 꿈속을 여행하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수원화성에서도 경관이 빼어난 장소로 꼽히는 방화수류정과 용연 자체가 거대한 공연무대가 된다. 연무대에서는 수원화성문화제를 대표하는 주제공연 ‘야조’가 펼쳐진다.
야조는 정조대왕이 직접 지휘했던 야간 군사훈련을 모티브로 한 공연이다. 횃불 행렬과 기마 퍼포먼스, 군사 군무에 불꽃과 음향을 더해 당시 군사훈련을 현대적인 종합예술로 재해석한다.
올해는 공연 횟수를 5회로 확대했다. 특히 시민 약 100명이 상궁과 장군, 군사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무대에 참여한다. 전문 공연단만 만드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역사 속 인물이 돼 공연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수원화성문화제가 지향하는 시민 참여형 축제의 성격을 보여준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은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다. 10월 4일 노송지대에서 출발해 수원종합운동장과 장안문을 거쳐 행궁광장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행렬이 펼쳐진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화성으로 향했던 을묘원행을 바탕으로 한다.
수원화성문화제의 역사적 뿌리이기도 하다. 수원시는 능행차 재현과 시민이 참여하는 수원화성 퍼레이드를 결합해 역사 재현을 넘어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거리축제로 확대하고 있다.
231년 전 왕실 행렬이 지나갔던 길을 현대의 시민과 관광객이 다시 걷는 셈이다. 여기에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또 하나의 축을 담당한다.
화서문과 장안문 등 역사적 건축물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활용해 수원화성의 이야기를 빛과 영상으로 풀어낸다. 전통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대 기술을 통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수원화성문화제의 변화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관광산업과의 연결이다. 수원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머무르며 소비하는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느냐다.
수원시는 수원화성문화제와 정조대왕 능행차,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를 ‘수원화성 3대 축제’로 묶어 문화관광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재준 시장도 최근 3대 축제 추진계획 보고회에서 “63년 역사를 지닌 수원화성문화제는 글로벌 축제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저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원화성문화제와 정조대왕 능행차 등 수원이 보유한 관광 콘텐츠를 산업화하고 글로벌 축제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축제의 산업화는 단순히 관람객 숫자를 늘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광객이 수원을 찾아 식사하고, 카페를 이용하고, 전통시장을 방문하고, 숙박하며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야간 콘텐츠 확대는 지역경제와도 연결된다. 관광객이 낮에 수원화성을 보고 곧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녁 공연까지 기다리며 주변 상권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복 대여와 공연, 미디어아트, 야간관광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축제를 문화행사에 머물게 하지 않고 관광과 상권을 연결하는 도시경제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만으로 관광객이 지속해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다시 찾을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에서 수원시가 선택한 해법은 ‘경험’이다. 한복을 입고 성곽을 걷고, 화성행궁 전각을 이동하며 공연을 보고, 용연에서 수상공연을 감상하고, 연무대에서는 정조시대 군사훈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을 만나는 방식이다.
낮과 밤, 역사와 기술, 전통과 공연을 하나의 관광 경험으로 연결한다. 특히 사진과 영상 중심의 SNS 시대에 한복과 수원화성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는 젊은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자산이 될 수 있다.
한복 차림으로 세계문화유산을 걷고 그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는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수원 관광을 알리는 홍보 채널이 될 수 있어서다.
결국 올해 축제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를 넘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 ‘지역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 그리고 ‘다시 수원을 찾고 싶은 이유를 만들었는가’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올해로 63회를 맞는다. 60년 넘게 이어져 온 지역축제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역 주민이 즐기는 향토축제에서 전국 관광객이 찾는 역사문화축제로 성장했고,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는 글로벌 문화관광축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수원만이 가진 수원화성이 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가을축제가 동시에 열리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축제의 실제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수원이 가진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역사적 공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축제 관람객을 지역경제의 소비자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리고 시민이 구경꾼이 아닌 축제의 주체로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이재준 시장이 시민들에게 던진 “한복을 입고 조금 더 특별하게 즐겨보시면 어떨까요”라는 제안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문화유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역사의 한 장면을 경험하자는 것이다.
한복을 입은 시민과 관광객이 행궁을 거닐고, 밤이 되면 전각마다 음악과 춤이 흐른다. 용연의 물 위에는 빛이 번지고 연무대에는 횃불이 타오른다. 231년 전 정조가 꿈꾸었던 도시와 2026년의 수원이 만나는 순간이다.
수원화성문화제가 63년 역사를 넘어 세계인이 찾는 축제로 도약할 수 있을지, 올가을 수원화성에서 그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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