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탐구·성찰 과정 인정, 학생 성장 중심으로 전환
안민석 교육감 “취지 공감”, 정책 반영 의사
[이코노미세계] 학생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예술·문화 활동을 통해 어떤 관심과 재능을 발견했는지, 스포츠 활동에서 무엇을 배우고 성장했는지를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학교 교육에서 독서와 예술문화, 스포츠 활동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학 입시와 교과 학습 부담이 커지면서 학생들이 비교과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동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회에서 이런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진로 탐색과 대학 진학 준비까지 연결하자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 조병진 의원이 10월 2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을 만나 독서(Reading)·예술문화(Arts)·스포츠(Sports)를 연계한 이른바 ‘라스(RAS) 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한 ‘라스 인증제’ 도입을 제안했다.
핵심은 단순히 프로그램 참여 횟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활동 과정에서 무엇을 탐구했고, 무엇을 느꼈으며, 그 경험이 자신의 진로와 미래 설계에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단계별로 인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뤄져 온 여러 체험활동을 ‘참여’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 기록’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인 셈이다.
라스 교육의 기본 취지는 학생의 균형 있는 성장이다. 독서는 사고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예술문화 활동은 창의성과 감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스포츠 활동 역시 건강뿐 아니라 협력과 공동체 의식 등을 경험하는 교육 과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고등학교다. 학생 입장에서 대학 입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활동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교과 학습과 시험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활동을 지속하려면 학생 스스로 참여할 이유와 동기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조 의원도 이 점을 주목했다. 라스 교육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균형 있는 성장을 지원하는 취지는 분명하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입시와 학업 부담 때문에 활동 참여 동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활동을 통해 자신의 관심과 적성을 발견하고, 이를 진로 탐색과 학업 설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여기에서 나온 대안이 ‘라스 인증제’다. 라스 교육을 학교에서 실시하는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참여와 탐구, 성찰 과정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인정하는 구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조 의원의 제안대로라면 라스 교육의 무게중심도 ‘무엇을 했느냐’에서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느냐’로 이동하게 된다.
라스 인증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활동의 ‘양’만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 의원이 제안한 인증제는 독서·인문, 진로, 체육·예술, 동아리, 탐구 등 6개 영역을 중심으로 학생의 활동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각 영역에서는 다시 ‘참여-탐구-성찰’로 이어지는 단계별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구상이 제시됐다. 예컨대 특정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활동 과정에서 어떤 주제를 탐구했는지, 활동 후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자신의 진로나 관심 분야와 어떻게 연결하려 노력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자는 취지다. 이는 학교 체험활동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횟수나 시간만 채우는 방식보다 활동의 내용과 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할 경우 학생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성찰 과정’이 교육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라스 교육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관심과 적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이 무엇을 경험했는지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탐구하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인증제의 성패는 ‘인증서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활동 과정과 성장을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시간이다. 교과 수업과 시험 일정이 촘촘하게 운영되는 상황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추가하면 학생과 교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조 의원이 기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부터 방학 전까지를 ‘라스 집중활동 기간’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별도의 교육과정을 무리하게 신설하기보다 기존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 라스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하자는 접근이다.
운영 주체별 역할도 나눴다. 경기도교육청은 라스 교육의 기본 운영모델과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일선 학교는 학교별 교육 여건과 학생들의 수요를 고려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선택해 운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육청이 모든 학교에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내려보내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큰 틀의 기준은 교육청이 마련하되 구체적인 운영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 학교별 특성과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자는 것이다.
학교마다 학생 수와 시설, 지역 환경, 교육 프로그램이 다른 만큼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제도가 작동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라스 인증제가 현실화될 경우 교육청의 ‘공통 기준’과 학교의 ‘자율성’을 어느 수준에서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제안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라스 활동과 학생의 진로를 연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많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을 읽고, 예술을 접하고, 스포츠에 참여하고, 동아리와 탐구활동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는지 발견할 수 있다는 데 교육적 의미가 있다.
라스 인증제가 이런 경험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각각 분리돼 있던 활동을 자신의 진로와 연계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조 의원이 ‘관심과 적성 발견’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에게는 진로 탐색과 학업 설계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는 과정이 향후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스 교육을 단순한 여가·체험 프로그램으로 접근하기보다 학생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는 교육과정의 하나로 정착시키는 것이 이번 정책 제안의 핵심 방향이다.
조 의원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의 라스 활동이 대학 진학 과정에서도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인증 기준과 운영모델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대학 진학 과정에서 라스 인증제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는 향후 제도 설계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라스 인증제가 실제 정책으로 추진된다면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인증 기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학교마다 교육환경과 프로그램이 다른 상황에서 학생의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인증할 것인지 세부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학생의 ‘성찰’이나 ‘성장’을 어떻게 확인할지도 과제다. 단순히 활동 시간이나 참여 횟수처럼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만 강조할 경우 제도의 본래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평가 기준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학생과 교사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제도의 목적과 학교 현장의 실행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기준 마련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인증을 받기 위해 또 다른 ‘스펙 쌓기’에 나서는 방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라스 인증제의 출발점은 학생이 독서와 예술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관심과 적성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인증 자체가 목표가 된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경쟁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의원이 활동의 양뿐 아니라 ‘탐구 과정과 성찰, 진로 연계 노력’을 종합적으로 인정하자고 제안한 부분은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의 수용성도 살펴야 한다. 새로운 인증체계를 운영하려면 프로그램 구성부터 학생 활동 확인, 기록과 관리까지 학교가 담당해야 할 업무가 생길 수 있다. 기존 창의적 체험활동을 활용한다고 해도 교사의 추가적인 업무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운영모델을 마련해야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
교육청이 표준화된 기본모델과 간소한 인증 기준을 마련하면서도 학교가 자체 여건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교육청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조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라스 인증제 제안 취지에 공감하고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의회 차원의 정책 제안에 교육청이 공감을 표시하면서 라스 인증제가 실제 경기교육 정책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앞으로의 관건은 구체성이다. 독서·인문, 진로, 체육·예술, 동아리, 탐구 등 각 영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참여·탐구·성찰 단계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것인지, 학교별 차이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등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학생과 교사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인증제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대학 진학과의 연계’가 학생들의 참여 동기를 높이기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고 학생 스스로 관심 분야를 찾고 자신의 학업과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조 의원은 “학생들의 라스 활동이 진로 탐색과 학업 설계로 이어지고 대학 진학 과정에서도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인증 기준과 운영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청과 학교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학생의 학교생활은 교과 성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었고, 무엇을 탐구했으며, 어떤 문화와 예술을 경험했고, 스포츠와 동아리 활동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도 한 학생이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다.
조병진 의원이 제안한 라스 인증제는 바로 그 ‘과정’을 학교 교육 안에서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안 취지에 공감을 나타낸 만큼 이제 관심은 실제 정책 설계로 옮겨가게 됐다.
단순한 인증서 발급 제도를 넘어 학생의 경험을 진로 탐색과 학업 설계로 이어주는 교육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입시 부담 속에서 위축되기 쉬운 독서·예술문화·스포츠 활동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가 향후 라스 인증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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