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관리부터 원도심 유휴공간 활용까지, “청소년 생활에 필요한 변화 만들 것”
[이코노미세계]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도시는 어른들이 보는 도시와 얼마나 같을까. 어른들에게 스쿨존은 교통안전 정책의 하나일 수 있지만 매일 그 길을 걸어 학교에 가는 학생에게는 하루 두 번 반드시 지나야 하는 ‘생활 현장’이다. 전동킥보드 역시 새로운 교통수단이라는 행정적 분류보다 인도를 걸어가는 학생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버스 배차 간격도 마찬가지다. 행정기관에서는 노선과 수송 인원, 운송 효율성의 문제로 접근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느냐, 수업이 끝난 뒤 얼마나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오산시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조용호 오산시장이 세교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나 청소년들이 직접 체감하는 지역 현안과 정책 아이디어를 들었다. 형식적인 간담회를 넘어 청소년의 눈으로 도시를 다시 들여다보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 시장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산 청소년들이 지역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며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솔직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학생들이 제시한 내용은 막연한 요구에 머물지 않았다. 스쿨존과 통학로 개선을 비롯해 전동킥보드 속도 제한과 주차구역 관리, 금연구역 지도와 단속 강화, 등하교 시간대 맞춤형 버스 노선 증차와 배차 관리 등이 제시됐다. 청소년 문화·여가 인프라 확대와 주변 상권의 청소년 친화 가맹점 및 학생 할인 추진, 공공기관과 연계한 진로 체험형 봉사 네트워크 구축 등도 포함됐다.
안전과 교통, 문화, 지역경제, 진로까지 청소년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도시정책 전반이 테이블 위에 오른 것이다.
학생들의 제안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안전이다. 스쿨존과 통학로 문제는 학생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생활정책 가운데 하나다. 하루에도 수많은 학생이 등하교를 위해 같은 길을 이용한다. 차량 통행량과 불법 주정차, 보행로 확보 여부 등에 따라 학생들이 느끼는 안전도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용이 늘어난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역시 청소년 안전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학생들은 전동킥보드 속도 제한과 주차구역 관리 필요성을 제기했다. 무분별하게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보행에 불편을 줄 수 있고, 통학로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개인형 이동장치가 학생들에게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연구역 지도와 단속 강화 요구도 나왔다. 학교 주변과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에서의 흡연 문제를 단순한 계도 차원이 아니라 실제 생활환경 개선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요구다.
이 같은 제안의 공통점은 거대한 개발사업이나 대규모 예산사업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학생들이 매일 걷고, 기다리고, 이용하는 공간에서 경험한 불편을 토대로 한 생활밀착형 제안이다. 행정이 놓치기 쉬운 작은 문제를 실제 이용자인 청소년들이 찾아낸 셈이다.
교통 문제 역시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학생들은 등하교 시간에 맞춘 버스 노선 증차와 배차 관리를 요구했다. 청소년들에게 대중교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이동수단인 경우가 많다.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버스 노선과 배차 간격은 학교생활의 질과 직결된다. 버스를 한 번 놓쳤을 때 다음 버스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등교시간에 승객이 몰리는 노선에 충분한 차량이 투입되는지 등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특히 도시가 성장하고 주거지역이 확대될수록 통학 교통 문제는 더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출퇴근 수요와 학생들의 등하교 수요는 시간대와 이동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실제 이동시간과 주요 승하차 지점 등을 분석해 배차를 조정한다면 기존 대중교통 정책을 보다 촘촘하게 보완할 수 있다. 청소년의 이동권을 복지 차원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의 한 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청소년 문화·여가 인프라 확대도 학생들이 내놓은 주요 제안이다. 청소년 정책은 그동안 교육과 보호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실려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활은 학교와 학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고, 운동하고, 취미를 즐기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역시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여가시설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이용시간은 적절한지, 프로그램이 실제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지 등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시설 하나를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공공시설과 청소년시설의 프로그램을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재편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청소년이 원하는 공간을 청소년에게 직접 묻는 방식도 필요하다. 이번 만남은 이러한 정책 수요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들이 제안한 ‘청소년 친화 가맹점 및 학생 할인’은 특히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청소년 정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주변 음식점과 카페, 서점, 문화시설 등 지역 소상공인이 청소년 친화 가맹점으로 참여하고 학생들에게 일정한 혜택을 제공한다면 청소년들의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하면서 상권에도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순히 할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청소년을 환영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업종과 지역을 분석하고 소상공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한다면 지방정부와 학교, 지역상권이 연결되는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청소년 정책을 복지나 교육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경제와 공동체 정책으로 확장하는 접근이다.
이어 학생들은 공공기관과 연계한 진로 체험형 봉사 네트워크 구축도 제안했다. 청소년들에게 진로는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직업 세계를 직접 경험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교육만으로는 다양한 직업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역 내 공공기관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업무를 직접 살펴보고 관련 직업을 체험하면서 봉사활동까지 연계할 수 있다면 단순 견학보다 실질적인 진로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역사회 전체가 청소년의 교육 현장이 되는 셈이다.
특히 지방정부가 지역 내 공공기관과 학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면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힐 수 있다.
학생들이 직접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청소년을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 만남에서 조용호 시장이 강조한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오산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오산은 다를 수 있다”며 학생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짧은 말이지만 지방행정이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담고 있다. 도시정책은 일반적으로 성인을 중심으로 설계되기 쉽다. 교통과 주거, 산업, 복지 등 주요 정책의 수요 분석도 성인 인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청소년 역시 도시의 구성원이다. 통학로를 이용하고 버스를 타며 공원과 도서관을 찾는다. 음식점과 상점을 이용하고 지역의 문화공간에서 여가를 보낸다. 몇 년 뒤에는 대학과 취업 등을 이유로 지역을 떠날 것인지, 오산에 남을 것인지를 선택할 세대이기도 하다.
청소년이 살기 좋은 도시는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가 머물고 싶은 도시와도 연결될 수 있다. 청소년 정책을 단순히 ‘학생 지원’으로 바라보기보다 미래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건은 이제부터다. 청소년과의 소통이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학생들이 제시한 의견 가운데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사안과 중장기 검토가 필요한 사안을 구분하고, 각 부서가 실행 가능성을 검토하는 후속 과정이 필요하다.
스쿨존과 통학로 문제는 현장점검으로 연결하고, 전동킥보드 문제는 관련 제도와 관리체계를 검토할 수 있다. 버스 문제 역시 실제 학생들의 이용 수요와 노선별 혼잡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여가시설이나 청소년 친화 가맹점, 진로 체험 네트워크는 관련 부서뿐 아니라 학교와 지역상권, 공공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제안한 내용이 어떻게 검토되고 있는지 다시 알려주는 ‘정책 피드백’ 과정이 중요하다.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참여행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안이 반영됐다면 어떤 방식으로 반영됐는지,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청소년들도 지방행정에 대한 신뢰와 참여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번 만남이 ‘찾아가는 이동시장실’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시민이 시청을 찾아오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이 직접 시민들의 생활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는 방식이다.
특히 청소년은 일반적인 시민 간담회나 정책토론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계층이다. 학교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이러한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조 시장은 이동시장실에서 꾸밈없는 이야기를 들려준 세교고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오산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행정 안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다. 이번에 나온 제안들은 거창하지 않다. 학교 가는 길이 조금 더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것, 버스를 조금 덜 기다렸으면 좋겠다는 것, 청소년들이 마음 편하게 즐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지역 상점에서 학생들이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미래의 직업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삶을 바꾸는 정책은 때로 이런 작은 요구에서 시작된다. 지방행정의 경쟁력도 거대한 개발사업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매일 겪는 작은 불편을 얼마나 빠르게 찾아내고 해결하느냐가 도시의 체감 경쟁력을 좌우한다.
특히 청소년이 제기한 문제는 어른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도시의 빈틈을 보여줄 수 있다. 조용호 시장과 세교고 학생들의 만남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오산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오산은 다를 수 있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청소년 정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실제 정책으로 연결할 때 ‘청소년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목표도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세교고 학생들이 던진 생활 속 제안에 오산시가 앞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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