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예방 메시지에서 기부 실천까지, 한 학생이 던진 세 가지 화두

[이코노미세계] '당신의 바다는 파도 없이 고요하길 바란다.' 8월 29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자신의 SNS에 남긴 글귀다. 주인공은 경기 안양예고에 재학 중인 고교생 작가 백은별(18). 청소년 자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시한부', 초능력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윤슬의 바다'로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최근에는 1억 원을 기부하며 사회적 귀감이 됐다. 문학과 나눔, 그리고 청소년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는 이 학생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단순한 ‘천재 작가’ 이상의 의미를 던진다.
백은별 학생의 첫 작품 '시한부'는 청소년 자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10대들이 겪는 우울·압박·불안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독자층에 큰 울림을 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청소년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문학을 통한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가 기존 캠페인보다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어 발표한 '윤슬의 바다'는 초능력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소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차별과 고립을 극복하는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실과 판타지를 교차시켜 또래 독자들에게 자기 이해와 타인 존중의 가치를 전달한 것이다.
지난달, 백은별 학생은 자신의 인세 수익금 중 1억 원을 기부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통상 기업인이나 연예인, 전문직 고소득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 모임에 고등학생이 이름을 올린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단순한 재능 기부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한 사례”라며 “동료 학생들에게도 강한 울림을 준다”고 평가했다.
안양예고 동급생 이모(18) 양은 “책 속 주인공들이 우리 고민과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위로가 됐다”며 “기부 소식까지 듣고 나니 존경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성남시에서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46) 씨는 “요즘 아이들이 빠져드는 것은 SNS와 게임뿐이라 생각했는데, 또래 작가가 이런 영향력을 발휘한다니 놀랍다”며 “우리 아이에게도 꼭 읽히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지현 교수는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며 “특히 기부 행위는 청소년의 사회참여 모델을 새롭게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청소년 문학평론가 정우석 씨도 “백은별 학생의 작품은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청소년 리더십은 주로 학교 내 활동이나 지역 봉사에 국한됐다. 그러나 백은별 학생의 사례는 문학, 사회 메시지, 나눔이라는 세 축을 결합해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 청소년이 ‘수혜자’에서 ‘사회 기여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청소년 창작 지원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번 사례가 정책적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백은별 학생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 성취를 넘어 한국 사회가 마주한 청소년 문제·문학의 역할·나눔의 가치를 동시에 드러낸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언급한 ‘고요한 바다’라는 표현은, 청소년들이 더 이상 절망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사회 속에서 함께 설 수 있기를 바라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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