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안전성 따라 우선순위 정하고 중장기 관리체계 구축해야
[이코노미세계] 농촌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이 오가던 길이 어느 날 갑자기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 매일 출퇴근하던 주민은 물론 농기계와 배달 차량, 구급차와 소방차까지 통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분명 ‘마을길’이지만 토지대장상으로는 개인 소유 땅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랜 세월 사실상 도로로 사용됐다고 해서 토지소유자의 재산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 파주시 읍·면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이른바 ‘마을안길’ 문제다. 그동안 주민들이 별다른 문제 없이 이용해왔고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구간을 포장하거나 정비하면서 사실상 공공도로 역할을 해왔지만, 토지 소유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곳에서는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특히 토지 매매나 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바뀌거나 주변 개발에 따라 땅값이 오르면 그동안 잠재돼 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길을 이용해야 하는 주민의 통행권과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토지소유자의 재산권이 충돌하는 것이다.
파주시의회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개별 민원이나 소송의 영역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은영 파주시의원은 제266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읍·면 주민들의 생활과 안전에 직접 연결되는 마을안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파주시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핵심은 분쟁이 발생한 뒤 법정에서 해결하는 ‘사후 대응 행정’에서 벗어나 위험지역을 먼저 조사하고 관리기준을 세우는 ‘예방 행정’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마을안길 문제를 단순한 농촌지역의 생활민원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이미 행정·재정적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행정사무감사 제출자료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 7월까지 파주시의 현황도로 관련 소송은 28건이다. 같은 기간 도로사용료 지급은 102건, 금액으로는 약 4억2576만원에 달한다.
지 의원은 이 같은 소송 건수를 파주시 행정에 보내진 일종의 ‘경고’로 규정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소송에 대응하고 도로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갈등의 뿌리를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비슷한 조건을 가진 다른 마을안길에서 새로운 분쟁이 발생하면 행정은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만이 아니다.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해당 도로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커지고, 행정기관과 토지소유자 사이의 갈등도 깊어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주민과 토지주 사이의 마을 공동체 갈등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개별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파주시가 관내 마을안길의 현황과 위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다.
지 의원이 “분쟁이 발생한 뒤 소송하고 사용료를 지급하는 사후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을안길 문제의 복잡성은 현실의 이용 형태와 법적 소유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당수 마을안길은 주민들이 오랜 기간 공동으로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로 역할을 해왔다.
파주시가 포장이나 정비를 한 곳도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여러 사람이 이용해온 만큼 사실상 공공도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땅의 소유관계는 별개의 문제다. 해당 도로 부지가 개인 명의로 남아 있다면 토지소유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이다. 과거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주민 통행을 허용했더라도 상속이나 매매로 소유자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지가 상승 역시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았던 토지가 개발이나 주변 환경 변화로 가치가 높아질 경우 소유자가 토지 사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주민들은 수십 년간 이용해온 길이 갑자기 막히거나 사용 조건이 달라지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어느 한쪽의 권리만 강조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주민의 안정적인 통행권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토지소유자의 정당한 재산권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마을안길은 단순히 자동차가 오가는 통행로에 그치지 않는다. 농촌과 자연부락에서는 집과 집, 마을과 간선도로를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진입로인 경우도 있다. 주민들이 출근하고 병원과 시장을 오가는 생활도로이면서 농기계가 이동하는 생산 기반시설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다. 화재나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와 구급차가 진입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파주시의 기존 정책자료에서도 일부 마을안길은 1차선으로, 중·대형 농기계나 소방차 통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례가 있다.
따라서 마을안길 관리 문제는 토지분쟁이나 도로행정 차원을 넘어 농촌지역의 안전과 정주여건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 의원이 실태조사의 우선 대상을 ‘분쟁 위험이 높은 읍·면 지역’으로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모든 마을안길을 한꺼번에 정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주민 생활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곳부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 의원이 제안한 첫 번째 해법은 실태조사다. 조사 항목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해당 마을안길을 이용하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없는 유일한 진입로인지, 긴급차량의 통행이 필요한 곳인지, 과거 파주시가 포장이나 정비에 관여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도로 목록 작성과는 차이가 있다. 도로별 ‘분쟁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만들자는 의미에 가깝다. 예를 들어 수십 가구가 이용하고 대체도로가 없으며 소방차까지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마을안길과, 이용자가 적고 다른 진입로가 확보된 길을 같은 기준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
토지소유자가 사용 중단이나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인지, 이미 민원이 반복되고 있는 곳인지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자료가 축적돼야 행정이 문제가 터지기 전에 위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결국 선제행정의 출발점은 ‘어디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지’를 행정이 먼저 아는 데 있다.
두 번째 과제는 관리기준과 우선순위를 만드는 것이다. 지 의원은 공공성, 이용도, 안전성, 분쟁 위험도 등을 기준으로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기준은 향후 예산 투입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도 중요하다.
마을안길마다 토지 가격과 이용 주민 수, 도로 폭, 소유관계, 주변 여건이 모두 다르다. 모든 사유지를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때문에 어느 길부터 공공이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공공성이 높고 주민 이용이 많으며 대체도로가 없는 곳, 긴급차량 통행과 직결되는 곳, 소유권 변동 등으로 분쟁 가능성이 높은 곳 등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이 없다면 민원이 크게 제기된 곳부터 대응하는 이른바 ‘민원 대응형 행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면 행정도 주민과 토지소유자에게 개입과 지원의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세 번째 과제는 현장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다. 지 의원은 협의매수와 사용승낙, 사용료 지급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공공성이 매우 높고 장기간 도로로 사용할 필요가 있는 곳은 토지소유자와 협의를 거쳐 매입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반면 토지 매입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당장 매입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소유자와 사용승낙 계약을 체결해 통행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필요하면 적정한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현장에 하나의 해결방식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토지소유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주민들의 통행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민원이 발생할 때 담당 공무원이 임시방편으로 판단하는 방식보다 일정한 원칙과 절차를 담은 ‘분쟁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동일한 기준으로 대응할 수 있고 주민과 토지소유자 역시 행정절차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마을안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주민과 토지소유자를 서로 대립하는 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주민에게는 마을안길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기반시설이다.
하지만 그 길 아래 토지는 누군가가 보유한 재산이기도 하다. 지 의원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을안길을 주민들이 일터와 병원으로 이동하는 ‘삶의 길’이자 위급한 순간에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 아래 토지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정책의 목표는 어느 한쪽 권리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권리를 제도 안에서 조정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토지소유자와 주민, 행정기관이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소유권 변동이나 개발계획 등 분쟁 가능성을 높이는 변화가 발생했을 때 선제적으로 협의에 나서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법정까지 가는 사례를 줄일 여지가 있다.
그러나 현황도로 소송 28건과 4억원이 넘는 도로사용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행정이 사전에 문제를 관리하지 못할 경우 시민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소송에는 행정력도 들어간다. 담당 부서는 자료를 확보하고 법적 쟁점을 검토해야 하며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주민과 토지소유자 모두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갈등이 장기화하면 지역 공동체의 관계도 훼손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을안길 관리정책의 성과는 단순히 사용료를 얼마나 줄였느냐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소송으로 가기 전에 몇 건의 갈등을 조정했는지, 주민 통행이 중단될 위험이 있는 도로를 얼마나 사전에 찾아냈는지, 토지소유자와 합리적인 협의를 얼마나 이끌어냈는지 등이 새로운 행정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지 의원의 이번 제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행정의 시점을 바꾸자는 요구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마을안길이 막히거나 소송이 제기된 이후 행정이 대응하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위험을 사전에 찾아내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태조사→위험도 평가→관리 우선순위 설정→토지소유자 협의→협의매수·사용승낙·사용료 지급 등 해결방안 선택→중장기 관리라는 체계가 필요하다. 개별 사건에 대한 대응을 하나의 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셈이다.
지 의원은 “마을안길이 막힌 뒤 움직이는 행정은 이미 늦다”며 법정에서 사후적으로 답을 찾는 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을 먼저 살피고 갈등을 예방하는 적극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을안길은 거대한 SOC 사업도, 수천억원 규모의 개발사업도 아니다. 하지만 주민에게는 매일 집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생활 기반시설이다. 때로는 병원으로 가는 길이고 농사를 짓기 위해 오가는 길이며, 화재와 응급상황에서는 생명과 연결되는 길이다.
동시에 그 길을 이루는 땅은 시민 한 사람의 재산이다. 파주시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바로 이 두 가치 사이에 있다.
주민의 통행권을 지키면서 토지소유자의 재산권도 존중하는 것, 문제가 발생한 뒤 소송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분쟁 가능성을 먼저 찾아 해결하는 것, 개별 민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지은영 의원의 5분 자유발언이 던진 질문은 결국 파주시 행정이 생활 현장의 작은 위험을 얼마나 먼저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닿아 있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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