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가 제안한 생활 밀착형 정책, 시민 반응 ‘호평’

[이코노미세계] 경기도 안성시가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직장인 부모를 위해 이색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도서관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출근하는 직장 겸 놀이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안성시청이 마련한 ‘여름방학 도서관 동행 프로그램’은 방학 중 아이 돌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린이집의 여름방학이 2주간인데, 그만큼의 휴가를 낼 수 있는 부모는 드물다”며 “조부모나 친척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부모가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안성시는 6~7세 아동과 그 부모가 아침에 함께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실험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이들은 도서관 내에서 준비된 놀이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부모는 같은 공간에서 원격근무를 진행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외식을 하며 하루의 반나절을 보내는 형식이다.
김 시장은 “시범적으로 어제와 오늘 이틀 간 진행했는데, 부모님들도, 아이들도 모두 무척 만족해했다”며 “아이들과 함께 체조도 하고, 한발술레잡기도 했는데 정말 예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돌봄 대체를 넘어, 가족 간 유대감 회복과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가족의 시간’을 공공이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모델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다는 평가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처럼 공교육이 중단되는 기간, 맞벌이 가정은 돌봄의 공백에 직면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문을 닫고, 방과후 수업도 줄줄이 휴강하면,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연차나 가족의 도움으로 이를 메워야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장 바쁠 시기에 아이 방학이 겹치면 출근 자체가 스트레스다. 친정이나 시댁 도움 없이 맞벌이하는 가정은 방학이 ‘공포’에 가깝다.” 안성시 공도읍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의 말이다.
안성시가 선보인 ‘도서관 출근 프로그램’은 이러한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공공시설인 도서관을 활용해 부모의 근무환경과 아이의 돌봄 공간을 한데 연결한 점이 특징이다. 공간과 시간, 자원을 창의적으로 재배치한 셈이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함께 출근하고 점심도 같이 먹을 수 있으니 부담이 덜하고 아이도 좋아한다”며 “도서관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안정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시의 시도는 돌봄 공백을 단순히 민간에 의존하지 않고, 지자체가 적극 개입해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가족 친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 경영의 철학이 실험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김 시장은 “아이에게도, 직장동료에게도, 친척에게도 미안해하며 일하고 육아하지 않도록 하나하나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정책 설계의 일환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실험에 긍정적이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진아 교수는 “도서관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돌봄 연계는 공공서비스의 새로운 확장”이라며 “아이 돌봄이 더는 여성이나 가족 개인의 몫이 아니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성시의 ‘도서관 출근’ 프로그램은 아직 시범 단계지만, 시민의 반응이 긍정적인 만큼 향후 확대 운영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한 여타 지자체에도 벤치마킹 모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소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육아와 노동, 공공의 역할이라는 거대한 주제의 경계를 흔든다. 가족 돌봄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 속에서, 지역사회가 함께 부담을 나누려는 시도가 점차 주목받고 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동료에게 미안한 삶이 아니라, 누구도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안성시의 이 소박한 시도가 그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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