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문화재단 산하 백남준아트센터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실험적 학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음악과 미디어, 신체 예술을 아우르는 연구와 퍼포먼스를 통해 백남준 예술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자리다.
백남준아트센터는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학술 프로그램 ‘48시간 음미체 학교’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국내외 연구자와 예술가 13팀, 총 20명이 참여해 강연과 심포지엄, 퍼포먼스,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의 실험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학술 행사나 공연이 아니라, 연구자와 예술가, 관객이 함께 ‘시간의 예술’을 체험하는 수행적 연구 공간을 지향한다. 프로그램 제목인 ‘48시간’ 역시 예술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체험하고 공유하는 예술 실험을 의미한다.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 배경에는 1965년 독일에서 열린 플럭서스 공연 ‘24시간(24 Stunden)’이 있다. 당시 8명의 플럭서스 작가들은 24시간 동안 각자의 퍼포먼스를 이어가며 밤을 함께 새웠다. 예술을 공연이나 작품이 아닌 공동의 시간 경험으로 확장한 실험이었다.
‘48시간 음미체 학교’ 역시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연구자와 예술가, 관객이 시간과 연대, 수행이라는 새로운 물질성을 공유하는 예술적 실험을 목표로 한다.
참여진에는 김상민 연세대 객원교수, 그랜트 볼머 메릴랜드대 교수, 뉴욕시립대의 알렉산드라 주하즈 교수 등 국내외 연구자들이 포함됐다. 또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실험 음악 듀오 신비밴드, 드랙 아티스트 모어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도 참여한다.
이는 백남준이 강조했던 예술 간 경계 해체와 융합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구성이다.
행사는 첫날 저녁 백남준의 LP 음반 감상회로 문을 연다. 프로그램 ‘축제는 밤을 향해 열린다’에서는 백남준이 1977년 한정판으로 발표한 음반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My Jubilee ist Unverhemmet)’를 함께 듣는 시간이 마련된다.
이 음반에는 현대 음악의 거장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작품 ‘정화된 밤’을 원곡보다 네 배 느린 속도로 녹음한 사운드가 담겨 있다.
참가자들은 약 20분간 음반을 감상한 뒤 음악평론가 신예슬과 김지수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의 대담을 통해 쇤베르크와 백남준의 음악적 실험을 비교하며 논의를 이어간다.
이어 백남준아트센터 1층 로비 ‘TV 정원’ 앞에서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가 쇤베르크 원곡을 현악 6중주로 연주한다. 즉 음반 감상 → 음악 토론 → 실연 연주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백남준이 보여준 매체 간 확장된 음악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행사 둘째 날에는 미디어 이론과 예술을 결합한 학술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룬다. 뉴욕시립대 교수 알렉산드라 주하즈가 진행하는 워크숍 ‘매개된 함께-있기, 비디오 구하기’를 시작으로, 국제 심포지엄 ‘지루한 비디오, 나쁜 TV’가 열린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AI와 알고리즘 시대의 영상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진다. 김상민 연세대 객원교수는 ‘AI 알고리즘 기반 예술의 미래’라는 발표에서 인공지능 발전이 인간의 취향과 감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예술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한다.
그랜트 볼머 메릴랜드대 교수는 알고리즘과 플랫폼 중심으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분석한다. 특히 실리콘밸리부터 K-팝 산업까지 이어지는 데이터 기반 콘텐츠 생산 구조를 통해 현대 미디어 산업의 핵심 논리를 조명한다.
이수영 전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는 ‘나쁜 비디오의 바다’ 발표를 통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영상 환경 속에서 비디오의 물질성과 역사, 그리고 새로운 비디오 문화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결국 심포지엄의 핵심 질문은 하나다. “AI 시대에도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과 실험에서 출발할 수 있는가.”
둘째 날 밤에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 프로그램 ‘오신(娛身)의 밤’이 열린다. 원재연과 타무라 료는 백남준이 언급한 “전자적 충동과 놀라움”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타악기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순간적 감각의 에너지를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실험 즉흥 듀오 신비밴드는 ‘소리의 귀’라는 공연을 통해 음악과 춤이 분리되기 이전의 원초적 감각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또 드랙 아티스트 모어는 무용과 드랙을 결합한 공연을 통해 백남준 예술의 자유로운 정신을 현대적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 공연들은 음악, 신체, 퍼포먼스가 결합된 플럭서스적 예술 실험의 현대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보다 일상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조류 세밀화 작가 이우만과 함께하는 ‘TV 정원 탐조’ 프로그램이 오전에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백남준아트센터 인근 공원과 산을 걸으며 여름철 산새와 도시 새를 관찰한다. 이는 예술과 자연, 감각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어 안무가 하은빈의 즉흥 움직임 워크숍 ‘플러스-마이너스: 기억하는 시간과 망각하는 몸짓’이 열린다. 이 워크숍은 기록 매체인 비디오와 소멸의 예술인 무용을 교차시키며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감각 경험을 제공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탐색하는 자리이다. 음악과 미디어, 신체가 만나는 열린 실험의 장에서 참가자들은 48시간 동안 낯선 소리와 몸짓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백남준은 생전에 “예술은 기술과 인간, 그리고 시간의 결합”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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