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재정법 취지 반영 vs 행정 효율성 저하 지적

[이코노미세계] 광주시에서 5천만 원 이상 규모의 행사 예산 집행 내역을 시민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행사예산 공개 조례’가 다시 본회의 문턱을 두드린다.
상임위원회에서 두 차례 심사 끝에 부결됐던 이 조례는 부의 요구를 통해 본회의 재상정이 결정되면서, 투명한 행정과 효율적 재정 집행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제315회 광주시의회 임시회에서 노영준 시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는, 당초 시민의 알 권리 보장과 지방재정법 제60조의 취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해당 법 조항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결산 등 재정운영 상황을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상임위원회에서는 ‘행정 업무 과중’과 ‘불필요한 행정비용 발생’ 등을 이유로 보류되었고, 재심사에서도 다수 의원의 반대로 결국 부결됐다. 하지만 조례 발의 의원 측과 시민단체의 지속적 요구에 따라 부의 요구 절차가 가동되면서 본회의 재상정이 확정됐다.
발의자인 노영준 시의원은 “행사 예산의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지방재정법의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라며 “시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세금 낭비를 줄이고 행정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행사가 반복적으로 치러지면서 예산 사용의 적정성에 대한 시민 불신이 누적돼 왔다”며 “조례 통과는 불필요한 지출을 견제하고 집행기관 스스로 긴장감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지자체 행사에서 과도한 홍보비와 불투명한 집행이 논란이 된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이번 조례를 계기로 재정 집행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일부 시의원과 집행부는 조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시의원은 “이미 광주시는 예산·결산 보고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본 조례가 시행되면 동일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가공·게시해야 해 행정 부담이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은 “행사 예산 집행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경우 민간 협력업체나 협력 기관의 계약 세부 사항까지 노출될 수 있다”며 “이는 오히려 행정 신뢰를 훼손하고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 집행부 관계자는 “투명성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조례 시행을 위해 별도의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며 “행정 효율성과 투명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례 논의는 단순히 한 건의 제도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영 원칙과 행정 투명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지방재정법이 이미 재정운영의 공개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각 지자체가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행정 신뢰도가 달라진다”며 “광주시의 결정은 다른 지자체에도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서울, 부산 등 일부 광역단체에서는 1억 원 이상 행사 예산 집행 내역을 온라인에 상시 공개하는 사례가 있으며,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시 역시 이번 조례안을 계기로 ‘투명 행정’의 이미지를 강화할 기회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시민 김모(47) 씨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며 “조례가 통과된다면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시민으로서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또 다른 시민 이모(56) 씨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세부 내역 공개가 오히려 행정에 발목을 잡고 필요한 행사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들의 엇갈린 목소리는 이번 조례가 단순히 투명성 확보를 넘어, 시민 체감형 행정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기준과 방식이 적절한지를 묻고 있다.
본회의에 상정된 ‘행사예산 공개 조례’가 통과될 경우 광주시는 5천만 원 이상 행사에 대해 집행 내역을 시민에게 적극 공개해야 한다. 이는 재정 집행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나, 동시에 행정력 부담과 민간 협력기관의 정보 보호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길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자료 공개를 넘어, 어떻게 하면 시민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조례안 통과 여부와 함께 향후 구체적 시행 방식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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