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관람객이 작품을 만지고, 깨고, 태우는 행위 자체가 예술의 완성 과정이 되는 이색 전시가 경기도에서 펼쳐진다. 감상 중심의 전통적 전시 방식을 벗어나 ‘참여’와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이번 기획전은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는 실험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도자재단은 3월 27일부터 오는 7월 12일까지 경기도자미술관 2전시실에서 기획전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기존의 일방향적 전시 형식을 탈피해,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이 변화하고 완성되는 ‘과정 중심형 예술’을 제시한다. 도자라는 재료가 지닌 물질성과 인간의 감각, 행위가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변화를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흙은 마르고 갈라지고 깨지는 등 끊임없이 형태를 변화시키는 물질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흙의 물리적 특성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며,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변화의 과정’을 작품으로 제시한다.
기획 의도 역시 명확하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더 이상 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이자 완성의 주체로 참여하게 된다. 이는 예술의 정의를 ‘완성된 결과’에서 ‘진행 중인 경험’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특히 참여형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예술을 하나의 살아있는 과정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현대 미술이 지향하는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10명이 참여해 총 1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는 김선, 김아영, 랍 루이머, 세실 켐페링크, 우관호, 이철영·강아영, 정나영, 포레스트 가드, 홍근영 등으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작업 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협업했다.
이들은 도자를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행위와 관계를 담는 매개체’로 재해석하며, 관람객의 개입을 통해 작품이 변화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그 결과 전시 공간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유동적 예술 환경’으로 기능하게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나영 작가의 ‘부화의 조건’이 있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도자 주먹을 이용해 계란을 깨뜨리는 행위를 통해 내부에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파괴’를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적 구조를 갖는다. 해당 프로그램은 매일 오후 2시에 운영되며, 하루 3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김선 작가의 ‘마음의 기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관람객은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종이에 적어 항아리에 매달고, 이를 태우는 과정을 경험한다. 개인의 감정이 불을 통해 사라지는 동시에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는 4월 25일, 5월 30일, 6월 27일 등 총 세 차례 진행되며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또 다른 작품 ‘소망, 담다’는 이철영·강아영 작가의 협업 프로젝트로, 관람객이 도자 오브제를 쌓아 돌탑 형태의 구조물을 완성하는 참여형 설치다. 개인의 소망이 집적되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 작품은 미술관 2층 로비에서 상시 운영된다.
이번 전시는 특정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2전시실을 비롯해 2층 옥외 공간과 미술관 광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참여형 작품이 운영된다. 이는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확장된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작품별 운영 시간과 참여 방식이 상이한 점도 특징이다. 관람객은 단순히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의 규칙과 참여 방식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아영 작가는 시민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대형 설치 작품 ‘울림통’을 선보이며, 공동 창작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여러 가족이 함께 만든 작품을 더 많은 관람객이 경험할 수 있어 뜻깊다”며 “작가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는 전시가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예술 창작의 주체를 작가에서 관람객으로 확장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즉, 예술이 특정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누구나 참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도자는 오랜 시간 공예와 전통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도자를 ‘행위와 경험의 매체’로 재해석하며 현대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흙’이라는 원초적 재료를 통해 인간의 감각과 기억, 관계를 탐구하는 점은 도자의 물질성과 인간 존재를 연결하는 철학적 시도로 읽힌다.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이 변화하고 완성되는 전시”라며 “일상에서 쉽게 지나쳤던 ‘흙’의 감각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관람객 참여를 중심으로 한 전시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체험’과 ‘몰입’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 변화와 맞물린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도자라는 전통 매체를 통해 참여형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관람객의 행동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구조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의미를 갖는다.
경기도자미술관의 이번 기획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예술의 정의와 관람 방식, 창작의 주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보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전환된 경험은 관람객에게 새로운 예술적 감각을 일깨우며, 향후 전시 문화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
‘흙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들’은 결국 묻는다. 예술은 완성된 결과물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인가.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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