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안성의 한 사찰에 깃든 수백 년의 시간이 마침내 국가의 이름으로 보존된다. 고려와 조선을 잇는 건축사의 전환점을 품은 사찰 건축과, 조선 전기의 학문과 정치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고문헌이 나란히 국가 보물로 지정되면서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원곡면에 위치한 청원사 대웅전과 고문헌 ‘예기집설’이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에는 조선시대 정치·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경책신공문’도 함께 포함됐다.
보물로 지정된 청원사 대웅전은 단순한 사찰 건축을 넘어, 우리나라 건축사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평가된다. 고려 후기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조선 초기로 이행되는 구조적·미학적 변화를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청원사 대웅전이 지닌 가장 큰 가치를 ‘과도기의 기록성’에 둔다. 고려시대의 안정적인 비례와 조형미 위에 조선시대의 절제된 공간 감각이 덧입혀져 있어, 한 건물 안에서 시대 전환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청원사 대웅전은 단일 시대의 완결된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 불교건축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이번 지정 과정에서 “건축 기법과 양식, 보존 상태, 역사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가 차원의 보존이 반드시 필요한 건축물”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보물로 지정된 예기집설 역시 학술적 가치가 각별하다. 예기집설은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를 해설한 문헌으로, 이번에 지정된 판본은 현존하는 판각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 성리학이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기의 학문 수준과 사상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라는 점에서, 예기집설의 보물 지정은 학계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당시 사회 질서와 정치 이념, 인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번 지정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경책신공문도 포함됐다. 경책신공문은 연산군 시기의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문서로, 조선 왕조의 통치 구조와 권력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특히 경책신공문은 교과서나 문헌 기록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당시의 생생한 정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번 문화유산 지정은 개별 유물의 보존을 넘어, 조선 전기 사회를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문화유산 지정의 이면에는 수십 년간 묵묵히 보존의 현장을 지켜온 개인의 노력이 있었다. 예기집설과 경책신공문을 오랜 기간 보전해 온 한병일 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문화유산 보존 사업에 뛰어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성에 사업장을 두고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을 보전해 온 한 병일씨는 “안성은 경기도의 경주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문화유산이 풍부한 지역”이라며 “이 소중한 자산을 앞으로도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개인의 헌신이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행정의 역할 역시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번 보물 지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지정 이후의 관리·활용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문화유산은 다시 ‘닫힌 유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성시는 앞으로 청원사 대웅전과 보물급 고문헌을 중심으로 학술 연구와 시민 공개, 문화관광 연계 방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교육·연구·관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종합적 보존 전략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보물 지정은 안성이 지닌 역사·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산업과 개발 중심의 도시 경쟁 속에서도, 지역의 뿌리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은 도시의 정체성과 품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또,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시간의 흔적을 품은 청원사 대웅전, 학문과 정치의 깊이를 전하는 예기집설과 경책신공문. 이들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안성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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