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도가 공동주택 관리의 고질적 갈등과 제도적 공백을 줄이기 위한 대대적인 규약 정비에 착수했다. 경기도는 입주자 권익 보호와 관리 효율성 강화를 핵심으로 한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제23차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총 51건의 손질 사항이 담겼으며,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불편과 분쟁 요인을 구조적으로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개정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관리 주체와 계약 상대방 간 관계를 보다 수평적이고 대등하게 재정립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며, 층간소음 등 생활 밀착형 갈등 대응 체계를 실효성 있게 다듬는 것이다.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라 공동주택 관리 문화 전반을 겨냥한 제도 재설계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계약 관계 표현의 전환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계약서상 ‘갑·을’ 용어가 ‘위탁자·수탁자’ 등 중립적 표현으로 대체된다. 상하 관계를 연상시키는 용어를 걷어내고 계약 당사자 간 법적 지위의 대등성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단어 교체 이상의 상징적 조치로 평가된다. 공동주택 관리 영역에서 발생하는 상당수 갈등이 권한과 책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계 정의부터 바로잡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입주자대표회의 운영과 관련된 규정도 강화된다. 동별 대표자와 선거관리위원의 겸임금지 위반 시 직무를 정지할 수 있는 근거가 신설된다. 관리 기구 내부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차단하고 선거 및 의사결정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겠다는 조치다. 그동안 일부 단지에서 제기된 ‘겸직 논란’과 대표성 시비에 대한 예방적 대응 성격이 짙다.
개인정보 보호 체계 역시 한층 촘촘해진다. 경기도는 준칙의 모든 서식에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를 신설한다. 관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집되는 입주자 정보에 대해 정보주체의 명시적 동의를 제도화한 것이다. 최근 공동주택 단지에서 CCTV 영상 열람, 입주자 명부 활용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영상정보처리기기 촬영자료의 열람 및 제공 절차를 구체화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 공개 간 충돌 지점을 명문화해 해석 논란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현실적인 운영 규정 정비도 병행된다. 동별 대표자 보궐선거 실시 기한을 명확히 하고, 후보자 사진 촬영 유효기간을 확대하는 등 선거 관련 규정을 손질한다. 이는 형식적 규제 강화가 아니라 실제 관리 현장의 행정 부담과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정 성격이 강하다. 관리 규약이 지나치게 경직될 경우 오히려 분쟁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균형 조정으로 풀이된다.
관리 문화 개선과 회계 투명성 강화는 이번 개정의 또 다른 축이다. 개정안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이나 법적 근거 없이 관리주체에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제한 규정을 명확히 했다. 대표회의 권한과 관리주체의 집행 책임 간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취지다. 동시에 주택관리업자 회계 담당 직원의 부정행위로 인한 피해 방지 장치도 마련된다. 공동주택 관리비를 둘러싼 불신과 내부 통제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겠다는 접근이다.
회계 분야에서는 관리비 및 운영비 사용내역의 공개 방법을 구체화하고, 공사·용역 발주 시 승인된 예산 범위를 준수하도록 했다.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방식은 연차별 균등 적립 구조로 개선된다. 세대별 비용 부담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이는 단지 내 재정 운영 안정성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입주자 체감도가 높은 변화로 평가된다.
사회적 갈등 이슈로 부상한 층간소음 문제 대응 체계도 강화된다. 개정안은 층간소음관리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하고 분쟁조정 절차를 단계별로 구체화했다. 그동안 권고 수준에 머물렀던 대응 구조를 보다 실질적인 조정 체계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공동주택 생활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예방 중심 접근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도 관리비 3개월 이상 체납 세대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 통지 규정, 개인정보 관련 서식 정비 등 관리 전반에 걸친 세부 개선안이 포함됐다. 특히 동별 대표자 해임 요청 시 직무 정지 제도 폐지 여부, 경미한 과실에 대한 면책 규정 도입 여부 등 민감한 쟁점은 관련 단체 및 법률 전문가 논의를 거쳐 최종안에 반영될 예정이다. 제도 안정성과 현장 수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신중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경기도는 다음 달 중순까지 시·군 및 유관 단체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2026년 4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동주택이 이미 도시 주거의 표준 형태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관리 규약의 변화는 곧 생활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경기도의 이번 준칙 개정이 단지 내 갈등 구조를 얼마나 완화하고 관리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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