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중심 RAS 교육으로 창의·인성 함께 키운다
안민석 교육감 "작은 실천이 미래 교육의 큰 변화 만든다"
[이코노미세계] 스마트폰은 학생들의 일상에서 떼어놓기 어려운 필수품이 됐다. 친구와 대화하고 정보를 검색하며 학습 자료를 찾는 도구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업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또래 간 대화를 단절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어 스마트폰 사용을 둘러싼 학교 현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학생들이 스스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그 시간을 독서와 예술, 체육 활동으로 채우는 새로운 교육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 평택시 청담고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폰 프리 스쿨’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교의 특징은 교사가 휴대전화를 강제로 수거하거나 사용을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자치회가 중심이 돼 또래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자고 제안하고, 학생들이 토론을 거쳐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청담고를 찾아 폰 프리 스쿨과 RAS 교육 운영 현장을 살펴봤다. 이어 안성시 평생학습관에서 정책설명회를 열고 폰 프리 스쿨의 취지와 향후 교육 방향을 설명했다. 안 교육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 방문 내용을 소개하며 “강제가 아니라 자율로, 통제가 아니라 교육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담고의 아침 풍경은 일반적인 학교와 조금 다르다. 등교 시간 학생자치회 소속 학생들이 교문과 교실 앞에서 친구들을 맞으며 “휴대전화를 끄고 들어가자”고 권한다. 교사가 지시하거나 벌점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이 학생에게 참여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밴드 연습을 한다. 교직원과 함께 아침 달리기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던 시간이 독서와 음악, 운동, 친구와의 대화로 바뀌는 셈이다.
학교 현장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은 그동안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다. 학습권과 생활지도 차원에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돼 왔다. 휴대전화를 일괄적으로 수거할 경우 분실이나 파손에 대한 책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청담고의 실험은 이런 논란을 ‘학생 자치’와 ‘자율적 참여’라는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들이 직접 스마트폰 사용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토론을 통해 학교 안에서 지켜야 할 공동의 약속을 만든다는 것이다.
안 교육감도 청담고 방문에서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어른이 강제로 휴대전화를 걷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토론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해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이는 휴대전화 사용을 단순히 금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절제와 책임을 배우도록 하는 교육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학교가 정한 규칙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규칙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참여하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폰 프리 스쿨의 핵심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아 생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경기도교육청이 폰 프리 스쿨과 연계해 강조하는 것이 RAS 교육이다. RAS는 독서를 뜻하는 ‘Reading’, 예술·문화를 의미하는 ‘Arts’, 스포츠 활동을 뜻하는 ‘Sports’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교육 개념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 활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한 뒤 아무런 대안 프로그램이 없다면 학생들은 제한을 통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워진 시간을 흥미로운 활동과 새로운 경험으로 채우면 학생들은 스마트폰 없이도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담고 학생들이 독서와 밴드 연습, 아침 달리기에 참여하는 것도 이 같은 RAS 교육의 현장 사례다. 책을 읽으며 사고력과 집중력을 키우고, 예술 활동을 통해 창의성과 감수성을 높이며, 운동을 통해 건강한 생활 습관과 협동심을 기르는 구조다.
안 교육감은 “폰 프리 스쿨은 휴대전화를 못 쓰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시간을 RAS 교육 활동으로 채워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읽고, 만들고, 움직이며 학생들은 더 크게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생활 속에 스마트폰이 깊숙이 들어온 상황에서 사용을 전면적으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스마트폰은 연락과 정보 검색, 온라인 학습 등에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는 사용해야 할 때와 내려놓아야 할 때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폰 프리 스쿨은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고, 친구와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고, 책과 음악, 운동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 문제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생활 습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생 간 관계와 학교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쉬는 시간마다 각자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또래 간 대화와 놀이가 줄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폰 프리 스쿨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동시에 학교 공동체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운동하고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자치회가 운영의 중심에 서는 방식은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학생들이 캠페인의 취지를 직접 설명하고 친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소통 능력과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자신이 공동체의 규칙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책임감을 갖게 된다.
다만 자율 참여가 형식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충분한 토론과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유와 상황이 다른 만큼, 일률적인 기준보다는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한 세부 운영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실상 참여를 강요하면서 겉으로만 자율성을 내세운다면 정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학생들이 정책의 목적을 이해하고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꾸준한 설명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공감도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사용 절제를 요구하면서 어른들은 자유롭게 사용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교육적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일정 시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독서나 운동에 참여하는 공동체 프로그램도 검토할 만하다.
RAS 교육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학교 밖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모든 학교가 충분한 체육 시설이나 예술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전문 강사와 프로그램을 학교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안 교육감은 RAS 교육이 학교의 힘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지역사회가 학교와의 벽을 허물고 시설과 강사, 전문가를 학생들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벽깨기’ 교육으로 설명했다.
지역의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은 독서·인문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문화예술회관과 공연장, 미술관은 학생들의 예술 활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체육관과 운동장, 공공체육시설을 학교와 공유하면 학생들이 보다 다양한 종목을 경험할 수 있다.
지역 대학의 교수와 대학생, 예술인, 체육인, 은퇴 전문가 등이 교육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전문 영역을 경험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 지역사회는 보유하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학생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지역 인재를 함께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 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시설 개방과 안전관리, 강사 확보, 프로그램 비용, 학생 이동 문제 등을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단발성 체험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된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에 따라 교육 인프라의 차이가 크다는 점도 과제다. 문화·체육시설이 풍부한 도시 지역과 상대적으로 시설이 부족한 농촌 지역 사이에 프로그램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는 이동형 프로그램, 순회 강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교육 등을 통해 지역별 격차를 줄여야 한다.
폰 프리 스쿨과 RAS 교육이 학교 현장에 정착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 발달 단계와 스마트폰 사용 방식은 서로 다르다. 모든 학교에 동일한 운영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별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학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일괄적으로 수거하거나 처벌을 앞세우면 학생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학생들이 캠페인 기획과 운영, 평가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RAS 프로그램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독서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음악, 미술, 체육에 관심이 있는 학생의 요구는 서로 다르다.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 학생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어야 참여율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넷째, 정책 효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실제로 줄었는지, 수업 집중도와 또래 관계에 변화가 있었는지, 학생들이 어떤 프로그램에 만족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과 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프로그램 운영과 학생 관리가 교사에게만 맡겨지면 정책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강사와 시설, 운영 인력을 지원하고 교육청은 행정·재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공부하고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활용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평택 청담고의 폰 프리 스쿨은 스마트폰 사용 문제를 강제적인 금지가 아니라 학생들의 자율과 참여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휴대전화를 끄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연주하고, 교사와 함께 달리는 모습은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폰 프리 스쿨과 RAS 교육, 지역사회와 학교의 벽을 허무는 정책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된다면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읽고, 만들고, 움직이며 서로 관계를 맺는 성장의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안 교육감은 “지금의 작은 실천이 내일의 큰 변화를 만든다”며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놓고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뛰고 노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을 끄는 짧은 시간이 학생들의 미래를 얼마나 바꿀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학생들이 화면 대신 책과 친구, 음악과 운동을 선택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학교 현장의 작은 변화가 교육의 본질을 되찾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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