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반도체 산업에서는 속도가 생명이다. 지체는 곧 경쟁력 상실이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새해 첫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속도’였다.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둘러싼 국내외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용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총 1천조원에 육박하는 반도체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대한민국 산업사에서 유례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 시장에 따르면 현재 용인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처인구 이동·남사읍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360조원, 기흥캠퍼스 미래연구단지에 20조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단에 60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단일 도시 기준으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다.
이 같은 투자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2023년 7월 이동·남사 국가산단, 원삼 반도체 클러스터, 삼성 기흥캠퍼스 미래연구단지가 동시에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화단지 지정으로 용적률 상향, 각종 인허가 특례가 적용되면서 SK하이닉스는 투자 규모를 당초 122조원에서 600조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단순한 계획 단계가 아니다. 이미 정부 승인, 토지 보상, 산업시설용지 분양 계약까지 속속 진행되며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통상 국가산단은 계획 발표부터 정부 승인까지 4년 6개월이 걸리지만, 이동·남사 국가산단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각종 영향평가 신속 처리로 1년 9개월 만에 승인 절차를 마쳤다. 지난해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상에 착수해 불과 보름 만에 약 20%의 보상률을 기록한 점도 이례적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2025년 12월 산업시설용지 분양 계약을 체결한 것은 ‘입지 변경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 시장은 이를 두고 “국가산단에 여러 개의 대못을 박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용인의 반도체 경쟁력은 생산라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집적 속도 역시 눈에 띈다. 현재 용인에는 ASML,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기업을 포함해 92개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이미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으며, 누적 투자 규모는 최소 3조4천억원으로 추산된다.
플랫폼시티에는 반도체 R&D 중심의 기업 유치를 통해 이동·남사 국가산단과 원삼 클러스터를 잇는 ‘L자형 반도체 벨트’가 구축될 예정이다. 이는 생산-연구-부품 공급이 단일 생활권에서 이뤄지는 고밀도 산업 생태계를 의미한다.
이 시장은 최근 불거진 반도체 산업 분산 논의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도 내놨다. 이미 예비타당성 조사, 환경영향평가, 토지 보상, 기반시설 설계까지 완료된 용인 클러스터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모든 행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 5년 이상의 골든타임 상실로 이어지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치명적인 불리함을 안게 될 수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시간이 곧 보조금인 산업에서 지연은 곧 패배”라는 표현에는 위기의식이 담겼다.
대규모 산업 투자는 도시 구조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 용인시는 국가산단 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철도·도로·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 시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과 경기도 철도망 계획에 반도체 산단 연계 노선을 반영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주거 분야에서는 이동공공주택지구, 플랫폼시티, 언남지구 등 공공택지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급증하는 인구 유입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8년간 표류하던 언남지구는 교통 부담 완화와 연구개발 시설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식으로 정상화됐다.
반도체 도시라는 산업적 성격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점도 이번 시정 구상의 특징이다. 용인시는 용인FC 창단을 통해 스포츠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고, 공공수영장·파크골프장 등 생활 체육시설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용인에코타운, 그린에코파크 조성을 통해 생활폐기물 처리와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동시에 추진한다. 학교 통학로 안전, 교육환경 개선 투자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산업 성장과 생활 안전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천조개벽(千兆開闢)’. 이 시장이 내건 올해 시정 슬로건은 과장이 아니다. 용인은 지금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도시 경쟁력을 동시에 시험받고 있다. 투자 규모는 이미 숫자로 증명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속도와 완성도다.
반도체는 공장이 아니라 생태계다. 산업, 주거, 교통, 환경이 함께 움직일 때만 ‘1천조 투자’는 도시의 성장으로 완성된다. 용인이 그 실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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