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엄마, 글자가 춤을 추는 것 같아요. 한 아이의 이 짧은 말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읽기라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위가 어떤 아이에게는 세상이 뒤틀리는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한 이 한 문장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우리 교육 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아이의 고통, 부모의 눈물, 그리고 뒤늦게 응답하는 제도다.
읽기는 학습의 출발점이다. 모든 교과, 모든 지식, 모든 평가의 기초다. 그러나 글자를 읽고 해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난독증(디슬렉시아)은 그 출발선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 교실 안에서 아이는 ‘노력하지 않는 학생’으로 오해받고, 가정에서는 ‘왜 이렇게 공부가 힘들까’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문제는 아이의 능력이 아니라, 읽기 과정의 신경학적 특성에 있음에도 말이다.
난독증은 단순한 학습 부진과 다르다. 지능과 무관하게 나타나는 신경학적 특성으로, 글자 해독과 음운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 구분이 명확히 작동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 받아쓰기 시간에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가 있다. 소리 내어 읽기를 시키면 문장을 더듬는다. 교사는 ‘조금 더 연습하면 나아질 것’이라 말하고, 친구들은 아이를 기다리다 지친다. 아이는 점점 읽기를 피하고, 손을 들지 않으며, 책을 멀리한다. 학습의 문제는 자존감의 문제로 번진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난독증 아동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성적 하락이 아니라 정서적 위축이라고. 반복되는 실패 경험은 아이에게 ‘나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심는다. 이는 학습 동기를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는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질 위험을 키운다.
현실은 냉혹하다. 난독증 진단과 치료는 여전히 사설 시장 의존도가 높다. 전문 센터의 문턱은 높고, 비용은 무겁다. 수개월 프로그램에 수백만 원이 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부모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치료를 미룰 것인가, 가계 부담을 감수할 것인가.
한 학부모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아이 문제를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죄책감이었어요. 내가 더 일찍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런데 상담을 받으러 가니 비용이 너무 컸습니다. 아이의 어려움이 경제적 문제로 이어지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난독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조기 개입이 핵심임에도, 비용 장벽은 개입 시기를 늦춘다. 늦어진 개입은 더 큰 학습 격차와 정서적 상처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이 지점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된다. 임태희 교육감이 언급한 ‘파주 꿈·함·성 공유학교’는 그 변화의 상징적 사례다. 지역사회와 교육청이 협력해 난독증 등 읽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1:1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이곳에서는 읽기를 ‘훈련’이 아니라 ‘회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아이마다 다른 인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 충분한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허용하는 학습 환경이 제공된다.
현장에서 만난 한 교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난독 아동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안정감이다. 글자가 제자리를 찾도록 돕는 과정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심리적 지지이기도 하다. 아이가 ‘읽을 수 있다’는 경험을 다시 쌓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맞춤 교육의 효과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변화는 아이의 표정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책을 펴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소리 내어 문장을 읽는다. 더듬던 음절이 이어지고, 문장이 완성된다. 아이는 스스로 놀란다. 부모는 눈물을 흘린다.
아이에게 읽기가 가능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난독증 개입의 본질은 성적 향상이 아니다. 학습 접근권의 회복이다. 읽기를 통해 아이는 비로소 다른 교과, 다른 경험,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흐름은 교육 정책의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 학습 지원이 ‘부진 학생 보충’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인지 다양성을 전제로 한 ‘맞춤 지원’ 체계로 이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조기 진단 시스템 구축. 둘째, 학교 내 전문 인력 확충. 셋째, 공교육 기반 치료·지원 확대등이다.
난독증은 조기 개입 시 개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실 교사에게 진단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전문성과 제도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육은 이제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습 접근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읽기 능력은 개인 역량이 아니라 공공 자원에 가깝다.
“왜 우리 아이는 이렇게 힘들까.” 많은 부모가 이 질문을 홀로 견뎌왔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개인을 넘어 제도로 향하고 있다. “왜 난독 지원은 공교육의 기본 체계가 아니었을까.”
임태희 교육감의 페이스북 글이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책적 선언 이전에, 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공감. 공감에서 출발한 제도 변화. 교육 행정의 무게는 결국 이 작은 문장에서 비롯된다.
난독증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읽기 어려움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상당수 아이들이 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이는 잠재된 학습 격차이자 사회적 비용이다. 읽기는 교육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기본권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춤추던 글자들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아이의 세상도 제자리를 찾는다. 교육의 역할은 바로 그 순간을 앞당기는 데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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