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용수부터 도로·철도까지, 첨단산업도시 완성 위한 기반시설 총력전
[이코노미세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초대형 프로젝트가 경기 용인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참여하는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가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용인은 단순한 기업 생산기지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용인특례시는 이제 반도체 산업에서 ‘시간’이 경쟁력이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공장 건설과 전력·용수 공급, 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 구축이 늦어질 경우 대규모 투자계획만으로는 경쟁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도 이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시장은 24일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 출연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흔드는 일이 정리된 만큼 조금 늦었지만 국가산단 조성에 속도를 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분야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의 구상은 반도체 공장 건설에 그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교통·주거·산업·생활 인프라를 함께 확충하고, 향후 늘어날 세수를 교육·복지·문화·예술 등에 재투자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국가산단 조성 속도, 전력과 용수 공급, 광역교통망 구축에 더해 최근에는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를 둘러싸고 경기도와 용인시 간 이해관계까지 부딪히고 있다. ‘반도체 도시 용인’의 성공 여부가 기업 투자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조율 능력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한 축은 삼성전자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이다. 이 시장에 따르면 당초 국가산단 부지 조성을 위한 입찰공고가 올해 1월 나올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 불안 요인이 이어지면서 일정이 늦어졌고, 지난 7월에야 입찰공고가 이뤄졌다.
이 시장은 “이제 보상을 마무리하고 터를 닦는 공사를 올해 말에는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전자가 당초 계획보다 첫 번째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의 가동 시기를 앞당긴 점은 국가산단 조성 속도를 더욱 중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시장은 삼성전자가 1기 팹 가동 시기를 2030년에서 2029년 하반기로 1년 앞당긴 만큼 국가산단 부지 조성 역시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장이 빨리 지어져도 전력과 용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정상 가동할 수 없다. 이 시장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갈등 조정과 기반시설 구축을 주문하는 이유다. 그리고 송전 문제 등을 언급하며 국가산단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정부가 갈등을 해결하고 전력·용수 공급이 계획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용인 국가산단의 경쟁력은 투자금액의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지 조성에서 공장 건설, 전력·용수 공급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생산 시점을 1~2년 앞당기는 것은 단순한 일정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제품의 시장 선점과 공급능력 확대가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어 용인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축인 SK하이닉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원삼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모두 4기의 팹을 건설하고 있다. 이 시장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당초 계획보다 12년 앞당겨 2033년까지 4기의 팹을 모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특히 첫 번째 팹은 빠른 속도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이 시장은 내년 2월이면 1기 팹 절반이 1·2·3복층으로 지어지고, 1층 클린룸부터 기계와 장비가 들어가 내년 10월쯤이면 HBM 6세대와 7세대 고메모리 칩을 수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용인 입장에서 SK하이닉스의 생산시설 조기 가동은 의미가 크다. 생산시설이 본격 가동하면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집적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고, 산업단지 주변의 주거와 교통, 상업시설 수요도 함께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대한민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35% 이상이라고 강조하면서 생산능력을 신속히 확대해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또 2023년 7월 ‘반도체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이 지역을 정부가 반도체 지원 특별법에 따라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해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용인은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을 동시에 갖춘 대규모 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울러 초대형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통망 구축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이동읍 반도체 특화 신도시와 국가산단을 관통하는 국도 45호선이 핵심이다.
현재 용인 대촌교차로에서 안성 장서교차로까지 12.5㎞ 구간은 4차로다. 시는 이를 8차로로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으며 최근 턴키 방식 입찰공고까지 이뤄졌다. 이 시장은 도로를 신속히 확장해 국가산단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은 물류와 인력 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산시설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와 연구인력, 근로자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규모가 커질수록 기존 도로망만으로는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국가산단 조성과 도로 확장을 별개의 사업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도로뿐 아니라 철도망 확충도 용인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시는 경기 광주에서 국가산단까지 연결하는 경강선 연장을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경강선 연장이 국가철도망 계획에 포함될 경우 더 큰 철도 구상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 잠실에서 출발해 용인 처인구 국가산단을 거쳐 안성·진천을 지나 청주공항까지 연결하는 중부권광역급행철도(JTX)다. 이 시장은 현재 민자적격성 조사에 들어간 JTX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인 서부지역 철도망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성남 판교와 용인 수지구 신봉·성복동, 수원 광교, 화성 봉담을 연결하는 총연장 50.7㎞의 경기남부광역철도를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신봉동백선과 언남동천선도 추진되고 있다. 신봉동백선은 지난해 12월 제2차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됐다. 계획대로 구축되면 성복동에서는 신분당선 성복역, 구성역에서는 수인분당선과 GTX-A, 동백에서는 용인경전철 에버라인과 연계되는 철도망을 형성하게 된다.
언남동천선도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시장은 신봉동백선 개통을 전제로 경제성이 1.23으로 나왔다며 조기 실현을 위한 용역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한 교통망과 기존 도심의 철도망이 동시에 확충된다면 용인의 도시 구조 자체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처인구의 산업기능과 수지·기흥구의 주거·상업·교통 기능이 철도와 도로로 촘촘하게 연결되면서 ‘직주근접형 반도체 도시’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반도체 프로젝트가 속도를 내면서 새로운 쟁점도 등장했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법인지방소득세 공동세원화 문제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도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용인시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시민들도 불편을 감수했는데, 사업의 결실인 세금을 경기도가 가져가려는 데 대해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특히 향후 반도체 프로젝트가 본격화돼 세수가 증가하면 이를 용인의 복지와 교육, 문화·예술 등 그동안 충분히 투자하기 어려웠던 분야에 과감하게 투입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는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산업정책 차원을 넘어 지방재정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산업단지를 유치한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도로와 상하수도, 생활SOC, 교육·문화시설 등 추가적인 행정 수요가 발생한다. 인구와 기업이 증가하면 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따라서 늘어나는 세수를 지역의 도시 인프라 확충과 주민 삶의 질 개선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용인시의 논리다.
반면 공동세원화는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 격차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산업시설을 유치한 지역의 기여와 부담, 지방정부 간 재정 균형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가 어떻게 조정될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첨부 자료에는 경기도 측의 공동세원화 추진 논리나 구체적인 제도 설계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아, 이번 사안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향후 경기도 측 입장과 정책 내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용인시는 반도체 산업을 도시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 시장은 이달 초 베트남 다낭시를 방문해 용인의 반도체 산업과 인공지능(AI) 정책을 소개했다.
용인시와 다낭시는 올해 1월 우호결연을 맺었다. 이 시장은 다낭시가 개최한 한국·베트남 축제에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용인의 AI 활용 정책을 영문 PPT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특히 SK하이닉스 600조원, 삼성전자 360조원 등 총 960조원 규모로 발표된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 투자계획을 소개했고 다낭시 측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AI를 활용한 스마트 횡단보도와 어르신을 위한 AI 로봇, 맞춤형 학교 제설지도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도 함께 소개됐다.
시는 겨울철 도로 제설대책 평가에서 8년 연속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으며 공공수영장에는 전국 최초로 장애인 가족샤워실·탈의실·화장실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과 AI 행정을 결합해 ‘첨단산업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는 규모만 놓고 보면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경험하기 어려운 초대형 사업이다. 하지만 투자계획의 크기가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산단 부지를 제때 조성하고 전력과 용수를 공급해야 한다. 국도 45호선 확장과 철도망 구축도 생산시설 가동 시기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 산업단지 주변의 주거와 교육, 문화 등 생활 기반시설 역시 함께 준비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경기도, 용인시, 기업이 서로 다른 사업의 시간표를 하나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장 건설 시기를 앞당겨도 기반시설 구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조기 투자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산업시설과 교통·생활 인프라가 계획대로 구축되고 관련 기업까지 집적된다면 용인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산기지를 넘어 연구개발과 소재·부품·장비, 인재와 도시 기능이 결합된 산업생태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법인지방소득세를 둘러싼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연결된다. 반도체 산업 유치에 따른 경제적 성과를 어디까지 해당 지역에 돌려주고, 어느 정도를 광역 차원에서 공유할 것인가의 문제다. 산업시설을 유치한 지역의 부담과 성과를 인정하면서 지역 간 재정 격차까지 조정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는 이제 계획을 발표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공장을 짓고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실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반도체 경쟁 역시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용인이 세계적인 반도체 도시로 올라설 수 있느냐는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 자체보다 그 투자를 얼마나 신속하게 현실의 생산능력과 산업생태계로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상일 시장이 연일 강조하는 ‘속도’가 용인만의 지역 현안을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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