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을 넘어 행정과 시민의 일상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민원 서류를 분석하고 교통 흐름을 예측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일에도 AI가 활용되는 시대다. 이제 지방정부의 경쟁력은 단순히 디지털 장비를 얼마나 많이 갖췄느냐가 아니라, AI를 도시 운영 전반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명시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인공지능 전환(AX·AI Transformation)’을 도시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행정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교통과 안전, 복지, 교육, 산업 등 도시 전반의 운영 체계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13일 열린 광명시 이목포럼에서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을 초청해 ‘AI 시대 대체불가 대한민국: 광명의 미래를 바꿀 AX 전략’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이번 포럼은 급변하는 AI 기술의 흐름을 살펴보고 지방정부가 준비해야 할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공직자들이 AI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행정과 정책에 적용해 업무 효율과 시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박 시장은 “AI라는 문명사적 전환을 행정과 도시 정책 전반에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앞으로의 도시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며 “광명시는 한발 앞서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AI 전환은 기존 업무에 인공지능 프로그램 하나를 추가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행정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방식 자체를 시민 수요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 가깝다.
예컨대 민원 내용을 AI가 분야별로 분류하고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불편 사항을 분석하면 공무원은 단순 정리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축적된 교통 데이터를 활용하면 상습 정체 구간이나 사고 위험 지역을 미리 찾아내 대응할 수 있고, 복지 분야에서는 지원이 필요하지만 제도를 알지 못해 신청하지 못한 시민을 발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도시 안전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폐쇄회로(CC)TV와 각종 감지 장치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AI가 분석하면 화재나 침수, 시설물 이상, 범죄 위험 등 긴급 상황을 보다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담당자의 경험에 크게 의존했던 행정 판단을 데이터에 근거한 예측 행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광명시가 구상하는 AX의 핵심도 이 같은 도시 운영 방식의 변화에 있다. 시는 AI를 단순한 기술이나 특정 부서의 사업으로 보지 않고 행정과 산업, 교육, 시민 생활을 연결하는 새로운 도시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AI가 모든 행정 판단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분석해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시민에게 미칠 영향을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공직자의 몫이다. AI 전환의 성패가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이번 이목포럼이 공직자의 AI 이해와 응용 능력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광명시는 공직자가 먼저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방행정에는 각종 보고서 작성과 자료 검색, 민원 분류, 회의록 정리 등 반복 업무가 적지 않다. 생성형 AI와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이 같은 업무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공무원이 현장 확인과 정책 판단 등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부서별로 흩어진 자료를 연계해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통과 주거, 인구, 복지, 환경 데이터 등을 함께 살피면 특정 지역에 어떤 행정 수요가 발생할지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행정에서 위험과 수요를 미리 읽는 행정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그러나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행정 혁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업무 절차를 그대로 둔 채 AI 도구만 추가하면 오히려 업무 부담이 늘거나 부서 간 정보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전산 시스템과 데이터 기준을 정비하고, AI 활용에 적합한 업무와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할 업무를 구분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공직자의 실무 교육도 중요하다. 모든 직원이 전문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하고 오류나 편향을 판별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은 갖춰야 한다. AI가 작성한 보고서나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근거 자료와 비교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행정 책임성도 요구된다.
이 때문에 광명시의 AX 전략은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뿐 아니라 ‘공직자가 AI와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에 무게를 둬야 한다. 교육과 실증, 평가를 반복하면서 광명시 행정에 맞는 활용 기준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명시가 운영하는 이목포럼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주요 정책 의제를 공직자들이 함께 학습하고 시정에 접목하기 위한 정책 학습의 장이다. 그동안 대전환과 순환경제, 청년의 미래, 시민주권 등 다양한 시대적 과제를 다뤘다. 이번 AI 강연 역시 학습을 실제 정책 변화로 연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광명형 AX가 성과를 내려면 시민이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분야부터 적용해야 한다. 우선 교통과 안전은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고 정책 효과를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AI 활용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힌다.
교통량과 신호체계, 대중교통 이용 정보 등을 분석하면 시간대별 정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시민 이동 패턴을 기반으로 버스 노선과 배차 간격을 조정하거나, 보행자와 어린이·고령자의 이동이 많은 지역을 찾아 안전시설을 우선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현장 정보의 신속한 분석이 핵심이다. 집중호우나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기상 정보와 지형, 시설물 상태, 과거 피해 자료를 종합하면 위험 지역을 보다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이후의 대응 속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사전에 위험을 줄이는 예방 행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복지와 민원 서비스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복잡한 행정 절차를 시민 눈높이에 맞게 안내하고, 개인의 연령이나 가구 특성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여러 부서를 거쳐야 했던 민원을 한 번에 안내하는 체계를 갖춘다면 시민 불편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화려함보다 시민이 실제로 얻는 편익이다. AI 사업의 성과를 시스템 구축 건수나 투입 예산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민원 처리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재난 대응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정보 접근이 어려웠던 시민이 얼마나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AI 전환은 행정 혁신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의 산업구조와 일자리, 인재 양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금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AI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제 도입에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광명시가 기업의 AX를 지원하려면 업종별 수요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제조업은 품질 관리와 설비 예측, 유통업은 수요와 재고 분석, 소상공인은 고객 관리와 홍보 콘텐츠 제작 등 필요한 기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률적인 프로그램 보급보다는 기업 진단과 컨설팅, 실증 지원을 결합한 맞춤형 체계가 필요하다.
청년 인재 양성 역시 지역 산업과 연결돼야 한다. 단기 교육을 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기업의 실제 과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와 현장 실습, 취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은 실무 경험을 쌓고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선순환 체계가 마련돼야 지속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광명시는 시민의 생애주기에 맞춘 AI 혁신교육과 청년 대상 AI·AX 실무인재 양성, 지역기업의 AI 전환 지원체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광명시흥 테크노밸리와 3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AI를 비롯한 첨단산업과 우수기업을 유치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이 같은 계획이 구체화되면 광명은 서울과 인접한 주거도시를 넘어 일자리와 산업 기반을 함께 갖춘 자족도시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된다. 새롭게 조성되는 도시 공간에 데이터와 AI 기반의 교통·에너지·안전 시스템을 처음부터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반대로 도시 개발과 AI 산업 정책이 따로 추진되면 물리적 기반은 갖췄지만 기업과 인재가 머물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업 유치와 인재 양성, 창업 지원, 정주 환경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AI 행정이 확대될수록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행정기관은 시민의 복지와 세금, 건강, 가족관계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편의를 이유로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결합하거나 외부 서비스에 입력하면 정보 유출과 오남용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시민의 권리나 지원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AI에 맡길 때는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학습 데이터에 편향이 있으면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고, 판단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AI가 활용된 업무의 범위와 목적을 시민에게 알리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행정 결정에는 사람이 최종 책임을 지는 원칙도 분명히 해야 한다. 편리하고 빠른 행정만큼 공정하고 설명할 수 있는 행정이 중요하다.
디지털 격차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모바일 기기나 AI 서비스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장애인, 정보 취약계층이 새로운 행정 체계에서 소외돼서는 안 된다. AI 기반 서비스를 확대하더라도 대면 상담과 전화 안내 등 기존 접근 수단을 함께 유지하고, 시민 대상 교육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나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사업 초기부터 데이터의 호환성과 시스템 확장성, 유지관리 비용을 검토하고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기준을 세워야 한다.
광명시의 이번 이목포럼은 AI 시대를 대비한 방향을 공직사회와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포럼에서 제시된 비전이 실제 도시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실행 체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먼저 교통과 안전, 민원 등 시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후 성과가 확인된 사업을 다른 부서와 분야로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부서마다 다른 형식으로 관리하는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품질을 높이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정확하지 않은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정확하지 않은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데이터 구축과 관리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AX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초공사인 셈이다.
시민과 전문가, 기업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행정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술과 시민이 원하는 서비스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목적과 활용 데이터, 기대 효과와 위험 요소를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반영해야 AI 행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박 시장은 “AI 기술을 통해 행정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의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한다”며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광명시 공직자들과 함께 AI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며 시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혁신도시 광명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광명형 AX의 성패는 가장 첨단인 기술을 얼마나 빨리 들여오느냐보다 시민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공직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시민 서비스는 더 편리하게 만들고, 지역기업과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
AI는 도시의 미래를 자동으로 보장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와 책임 있는 활용 원칙, 시민 중심의 실행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릴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광명시가 이제 막 꺼내 든 AX 구상이 일회성 선언을 넘어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광명형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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