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산단 제조 기반·대학 연구 역량 연결해 미래기업 성장판 넓힌다
[이코노미세계] 산업도시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넓은 산업용지와 편리한 교통망, 상대적으로 낮은 토지가격이 기업 유치의 핵심 조건이었다. 지금은 여기에 연구개발 인력과 데이터, 인공지능(AI), 대학, 투자자본, 정주 환경을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하느냐가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
임병택 시흥시장이 국내 대표 클라우드 기업인 메가존클라우드를 찾은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단순한 기업 견학이라기보다 시흥의 산업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을 어떻게 중견기업과 유니콘기업으로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한 현장 행보로 풀이된다.
임 시장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 중부권 시장들과 함께 경기도 과천에 본사를 둔 메가존클라우드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클라우드 사업 상황실과 피지컬 AI 연구소 등을 둘러본 뒤 “시흥시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고 소회를 전했다.
특히 “과천이 가진 경쟁력이 부럽다”면서도 “언젠가는 시흥시만의 경쟁력으로 더 많은 기업의 성장을 돕고, ‘시흥메이드’ 유니콘기업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도시의 성과를 부러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흥의 산업 기반과 잠재력을 활용해 독자적인 기업 성장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주목할 대목은 ‘유니콘기업’과 ‘피지컬 AI’다. 두 단어는 시흥시가 추진하는 미래 산업 전략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을 외부에서 유치하는 기존 방식에 더해 지역 안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기업이 세계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고, 시흥의 강점인 제조업에 AI를 접목해야 한다는 과제다.
메가존클라우드는 국내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와 AI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가 공개한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1조7496억원으로 전년보다 27.9%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8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AI 관련 매출은 3700억원, 보안 분야 매출은 700억원을 넘어섰다. 단순한 클라우드 인프라 관리 기업을 넘어 AI와 보안 등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결과다.
회사는 과천지식정보타운에 ‘메가존산학연센터’를 두고 있다. 기업의 업무 공간에 연구와 교육, 산업 협력 기능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참고할 만한 사례다. 기업 한 곳의 입주가 고용과 세수 증대에 그치지 않고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과 연계된 산업 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이제 정보기술 기업만의 기반 시설이 아니다. 제조업체의 생산관리와 품질검사, 유통기업의 수요 예측, 의료기관의 데이터 관리, 지방정부의 행정 서비스까지 거의 모든 산업과 공공 영역에서 활용된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클라우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피지컬 AI는 AI가 컴퓨터 안에서 분석과 답변만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과 기계, 센서, 생산설비 등 현실의 장치를 인식하고 움직이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AI가 공장의 설비 이상을 감지하고, 로봇이 작업 환경을 판단해 움직이며, 생산량과 에너지 사용량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시흥에 피지컬 AI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시흥은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계·금속·부품·소재 분야 중소 제조기업이 밀집한 도시다. 산업 현장이 곧 기술을 시험하고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거대한 실증 공간이 될 수 있다.
전통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도시는 흔히 낡은 산업 구조와 환경 부담, 청년층 이탈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나 AI 전환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설비와 생산공정, 숙련 기술자, 산업 데이터가 축적된 제조 현장은 AI 기술을 실증하고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자산이다.
AI 기업에는 기술을 적용해 볼 공장이 필요하고, 제조기업에는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AI 기술이 필요하다. 두 집단을 연결하면 제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기업이 성장할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시흥이 대규모 제조 기반을 ‘과거 산업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기술의 시험대’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가령 AI 기반 비전검사 기술을 활용하면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하던 제품의 미세한 결함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설비에 부착한 센서와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장이 발생하기 전 이상 징후를 파악해 정비할 수 있다. 에너지 사용량을 분석해 전력 낭비를 줄이거나 생산계획과 재고를 최적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기업은 자체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이런 기술을 도입할 수 있지만 중소 제조기업은 다르다. 초기 비용과 전문인력 부족, 기술 실패에 대한 부담 때문에 AI 전환에 쉽게 나서기 어렵다. 지방정부와 산업 지원기관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이다.
시흥시가 AI 공급기업과 지역 제조기업을 연결하고 공정 진단부터 기술 도입, 실증, 성과 검증까지 단계별로 지원한다면 중소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한두 차례 교육이나 장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업별 생산공정과 문제를 진단한 뒤 적합한 기술을 적용하는 현장형 정책이 필요하다.
시흥시는 제조업과 AI, 바이오산업을 연결하는 산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시화국가산업단지의 제조 기반과 배곧경제자유구역의 연구개발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실증 생태계를 조성하고,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와 한국공학대학교, 경기과학기술대학교 등 지역 대학과의 협력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시가 제시한 AI·바이오 클러스터의 핵심은 산업계와 대학, 연구기관, 병원을 연결하는 전주기 혁신 체계다. 바이오 성장 거점과 AI 융합 실증 기반, 인재 양성 플랫폼을 함께 구축해 기업이 연구개발부터 실증, 사업화까지 지역 안에서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광명·시흥 도시첨단산업단지도 주요 거점이다. 광명시 가학동과 시흥시 논곡동·목감동 일원 약 49만㎡에 조성되는 이 산업단지는 시흥 북부권의 산업 지도를 바꿀 사업으로 꼽힌다. 시흥시는 산업단지 조성에 맞춰 전략산업과 선도기업을 유치하고 기존 산업 고도화와 미래 산업 전환을 이끄는 집적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공간적 기반은 기업 유치에서 중요한 자산이다. 다만 산업용지를 조성한다고 자연스럽게 첨단기업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과 연구기관, 투자자금, 판로, 교통, 주거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입주 공간만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성장 단계별 수요를 지원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창업 초기 기업에는 사무공간과 기술개발 자금, 실증 기회가 중요하다. 일정 수준 성장한 기업에는 대규모 투자와 전문인력, 국내외 판로가 필요하다.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려는 기업에는 넓은 사업 부지와 규제 해소, 글로벌 네트워크가 관건이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지원 체계를 세분화해야 지역에서 태어난 기업이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첨단기업 유치에 뛰어들면서 산업용지와 세제 혜택만으로 차별화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수도권 주요 도시들은 판교의 정보기술, 과천의 지식정보산업, 광교의 바이오·연구개발처럼 저마다의 산업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시흥도 기업 유치 숫자보다 ‘어떤 기업을 유치하고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흥이 가진 최대 강점은 대규모 제조 현장이다. AI 기업이 지역 제조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과 사업 모델을 다른 국내외 산업단지로 확산할 수 있다면 시흥은 AI 기술의 소비지가 아니라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생산지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간 연결을 담당할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 제조기업이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발굴하고, 적합한 AI 기업과 연구자를 찾아 연결하며, 실증 결과를 사업화로 이어주는 ‘산업 혁신 코디네이터’ 기능이다. 행정기관이 모든 기술을 직접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대학과 전문기관, 기업인 단체가 참여하는 협력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공공 데이터와 산업 데이터의 활용 기반도 중요하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려면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개별 중소기업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표준화와 보안, 기업 간 공유 범위 등을 정리하고 공동 활용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현장의 수요가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공급자 중심으로 장비를 구축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반복하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업이 겪는 불량률, 인력 부족, 에너지 비용, 납기 지연 등의 문제를 먼저 확인하고 이를 해결할 기술을 연결해야 한다.
유니콘기업은 기술과 자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수한 인재가 모이고 머물 수 있는 도시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이 시흥에서 성장하더라도 필요한 연구개발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서울이나 판교 등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흥에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와 한국공학대학교, 경기과학기술대학교 등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교육·연구 기반이 있다. 대학의 연구 성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지역 기업의 기술 수요가 대학의 연구·교육 과정에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대학생이 시흥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취업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채용 연계형 교육을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AI와 데이터 분야 전공자뿐 아니라 기계·전기·전자·소재 분야 인력이 AI 활용 능력을 갖추도록 융합형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청년 인재의 정착을 위해서는 교통과 주거, 문화, 보육 환경도 중요하다. 첨단산업 정책은 산업 부서만의 사업으로 완성될 수 없다. 도시계획과 교통, 교육, 주거정책이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여야 기업과 인재가 함께 정착하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이번 메가존클라우드 방문은 시흥의 미래 산업 방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클라우드·AI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는지 살펴보고, 기업과 연구기관이 결합한 공간을 직접 확인했다는 점도 향후 정책 설계에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방문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메가존클라우드를 비롯한 기술기업과 시흥 제조기업의 협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기술 상담과 실증사업, 인재 양성 등 실행 가능한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경기 중부권 지방정부 간 협력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비슷한 기업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별 산업 강점을 연결하면 더 큰 시장과 실증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과천의 지식정보산업과 시흥의 제조업, 인근 도시의 연구개발·물류 기반을 연계하는 광역 산업 협력 모델도 검토할 만하다.
성과를 평가할 기준도 분명해야 한다. 단순히 참여 기업 수나 교육 횟수를 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성 향상, 불량률 감소, 매출과 고용 증가, 투자 유치, 신규 창업, 지역 정착률 등 실질적인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 실패한 실증사업의 원인까지 축적해야 다음 정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임병택 시장이 언급한 ‘시흥메이드 유니콘기업’은 단순히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 한 곳을 배출하겠다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의 기업이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산업 전략이어야 한다.
유니콘기업 한 곳의 탄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혁신기업이 계속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다. 실패한 창업자가 다시 도전하고, 중소기업이 기술기업과 협력하며, 대학의 연구자가 창업에 나서고, 청년이 지역 기업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시흥은 수도권의 우수한 접근성과 시화국가산업단지의 제조 기반, 대학·연구기관, 배곧경제자유구역과 도시첨단산업단지라는 성장 공간을 갖추고 있다. 환경오염과 노후 산업단지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넘어 제조업과 AI, 바이오가 융합된 첨단산업도시로 전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과제는 실행이다. 제조기업의 AI 전환을 얼마나 빠르게 지원할지, 유망 기업이 시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자금과 공간을 어떻게 제공할지, 대학과 산업 현장을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할지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임 시장은 메가존클라우드 방문을 마친 뒤 “시흥시만의 경쟁력으로 더 많은 기업의 성장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다짐을 구체적인 정책과 기업의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다. 과천에서 확인한 유니콘기업의 성장 경험이 시흥의 산업 현장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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