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인공지능(AI)·딥테크 기업들이 세계 최대 기술혁신 무대 중 하나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기술력은 갖췄지만 해외 투자자나 사업 파트너를 만날 기회가 부족했던 기업들에 글로벌 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판교 제1·2테크노밸리 입주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2026 GH 베이스캠프’ 참여기업으로 에이올코리아, 메디에이지, 아이리브, 팩타고라, 스위그 등 5개사를 최종 선정했다.
선정 기업들은 국내에서 약 두 달간 해외 진출을 위한 사전교육을 받은 뒤 오는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 2026’에 참가한다. 현지 투자자와 기업 관계자를 만나 투자 유치와 사업 제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자사 기술과 서비스를 세계 시장에 알릴 예정이다.
GH는 행사 참가에 필요한 항공료와 숙박비, 현지 교통비를 비롯해 해외시장 진출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줄이고 기술 홍보와 투자자 면담, 사업 협력 논의에 집중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이번 사업은 판교테크노밸리를 기업이 입주하는 산업 공간에 머물지 않고, 유망 기술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혁신 거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국내 기술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입할 때 겪는 정보와 네트워크, 자금 부족 문제를 공공기관이 보완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 기술기업이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장벽은 기술 자체보다 시장 정보와 네트워크의 부족인 경우가 많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도 현지 투자자나 수요 기업을 만나지 못하거나, 각국의 사업 관행과 계약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AI와 딥테크 분야는 연구개발에 많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기술의 사업성과 확장 가능성을 해외 투자자에게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해야 하고, 경쟁 기술과 비교해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국내에서 통했던 사업계획서나 제품 소개 방식이 해외 투자시장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 설명에 치중하다가 정작 시장 규모와 수익모델, 해외 사업화 전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려면 지식재산권과 데이터 관리, 현지 규제, 계약 조건 등도 함께 살펴야 한다. 해외 진출이 단순히 전시회에 제품을 선보이는 차원을 넘어 종합적인 사업 전략을 요구하는 이유다.
GH 베이스캠프는 이러한 간극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사업이다. 기업을 해외 행사에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사전교육을 통해 현지 활동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설계됐다. 두 달 동안 각 기업의 사업 경쟁력을 점검하고 해외 투자자에게 전달할 핵심 내용을 다듬는 과정이 사업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선정 기업들은 영문 기업소개 자료와 투자설명 자료를 정비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사업의 경쟁력을 전달하는 발표 역량을 높여야 한다. 현지에서 만나야 할 투자자와 협력기업을 미리 발굴하고, 면담 이후의 후속 협상 계획까지 마련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GH는 이번 참여기업을 선정하면서 사업 경쟁력과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1차 서류평가와 2차 면접평가를 거쳐 에이올코리아, 메디에이지, 아이리브, 팩타고라, 스위그 등 5개사를 최종 선발했다.
선정 기업들이 AI와 딥테크 분야에 집중됐다는 점은 최근 글로벌 기술시장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AI를 기존 산업과 결합한 서비스와 고도의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한 딥테크는 세계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힌다. 반면 기술개발에 필요한 초기 비용이 크고 사업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외부 투자와 전략적 제휴가 중요하다.
해외 투자자의 시각에서 기술기업의 경쟁력은 기술의 독창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시장에서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있는지, 다른 국가와 산업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지가 함께 평가된다. 기술의 우수성을 시장성과 연결해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한 셈이다.
GH가 서류평가에 이어 면접평가를 실시한 것도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사업모델뿐 아니라 해외 진출 의지와 준비 정도, 현장 대응 역량 등을 폭넓게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정된 지원을 실질적인 해외 진출 성과로 연결하려면 현지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선별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참여기업이 5개사로 제한된 만큼, 앞으로 사업 성과가 확인되면 지원 대상과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판교에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술기업이 모여 있어 해외 진출 지원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참여기업들이 오는 10월 참가하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는 스타트업과 투자자, 글로벌 기술기업 관계자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국제 기술 행사다. 혁신 기술과 새로운 사업모델을 소개하는 무대이자, 창업기업이 투자자 및 사업 파트너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자리다.
판교 기업들에는 세계 시장의 기술 흐름과 투자 기준을 현장에서 확인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경쟁력을 인정받은 기술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사업실적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확장성과 시장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새로운 투자와 협력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현지 활동의 핵심은 단순한 행사 관람이나 기업 홍보가 아니라 실질적인 만남을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투자자 면담과 기업 간 상담, 공동사업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후속 과제를 확보해야 한다. 행사 기간에 이뤄진 짧은 대화를 투자 검토나 기술 실증, 업무협약, 현지 진출 논의로 발전시키는 후속 지원도 중요하다.
GH가 항공·숙박·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은 기업의 현실적인 부담을 낮춘다는 의미가 있다. 해외 행사 참가에는 체류비뿐 아니라 전시와 홍보, 통역, 현지 이동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자금과 인력이 넉넉하지 않은 스타트업에는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용 지원만으로 해외 진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 투자자의 관심 분야를 분석하고 기업별 맞춤형 상담 일정을 확보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행사 종료 이후에도 투자자와 협력기업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문과 연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GH 베이스캠프는 2024년 시작됐다.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판교 입주기업에 해외시장 탐색과 투자 유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산업단지와 기업지원 공간을 조성·운영해 온 GH가 입주기업의 성장과 해외 진출까지 지원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판교 제1·2테크노밸리는 국내를 대표하는 정보기술·첨단산업 집적지다. 여러 기술기업과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어 기업 간 협업과 인재 교류에 유리하지만, 판교 안에서 형성된 기술과 사업모델이 세계 시장으로 확장되려면 별도의 연결 통로가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입주 공간이나 기반시설뿐 아니라 투자와 판로, 인재, 해외시장 진출을 아우르는 종합 지원이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 거점의 경쟁력도 입주기업 수나 시설 규모보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성장기업과 글로벌 기업을 배출하느냐에 따라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GH 베이스캠프는 공공기관의 기업지원 방식이 공간 공급에서 성장 지원으로 전환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판교가 국내 기업의 집적지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려면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춘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업이 일회성 해외 연수나 행사 참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현지 투자자와의 면담 건수뿐 아니라 후속 투자 검토, 기술 실증, 수출계약, 공동사업, 현지 법인 설립 등 구체적인 결과를 지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해외시장 진출은 행사 한 번으로 성과가 나기 어렵다. 첫 만남 이후 추가 자료를 전달하고, 기술과 사업모델을 다시 검증받으며, 계약 조건을 협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귀국 이후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이어지는 후속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기업별 상황에 맞는 지원도 중요하다. 투자 유치가 우선인 기업이 있는 반면, 현지 유통망이나 기술 실증 파트너 확보가 더 시급한 기업도 있다. 모든 참여기업을 같은 기준으로 지원하기보다 기술 특성과 진출 단계에 따라 목표를 세분화해야 사업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올해 선정된 5개사가 미국 현지에서 어떤 반응을 얻고, 이를 실제 투자와 사업 협력으로 연결하느냐는 향후 GH 베이스캠프의 확대 여부를 가늠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 성공 사례가 축적되면 판교에 입주한 다른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고, 판교테크노밸리의 국제적 인지도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용진 GH 사장은 “참여기업들이 현지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판교 기업들의 실리콘밸리 도전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두 달간의 사전교육과 10월 현지 활동을 거쳐 투자와 계약, 협력사업이라는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다음 과제다. 공공기관이 마련한 ‘베이스캠프’가 국내 유망 기술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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