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안성에는 오래전부터 2와 7이 서는 날이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이 날이면 안성중앙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온기를 확인하는 장소로 변한다. 올해 마지막 장날이었던 27일, 안성중앙시장에서는 조금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상인회가 시민들을 위해 떡국을 끓여 대접한 것이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올해 마지막 장날을 맞아 중앙시장 상인회에서 한 해 동안 시장을 사랑해 준 시민들에게 떡국을 정성껏 끓여 대접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는 4년 전 700그릇으로 시작됐지만, 올해는 2000그릇을 준비하고도 부족할 만큼 많은 시민이 시장을 찾았다.
단순한 나눔 행사로 보기엔 숫자가 남긴 의미가 작지 않다. 700에서 2000으로 늘어난 그릇 수는, 전통시장을 향한 시민 발길이 얼마나 회복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안성중앙시장 상인회는 올해 유독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야간 방문객을 유도하기 위한 ‘밤마실’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형·문화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데 공을 들였다.
김 시장은 “올 한 해 밤마실을 비롯해 다양한 사업을 하느라 상인회가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그만큼 매출도 오르고 손님들도 조금씩 늘어 참 행복한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전통시장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 확산, 소비 패턴 변화는 시장 상인들에게 오랜 시간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그럼에도 안성중앙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가격 경쟁’이 아닌 ‘경험과 관계’에 방점을 찍은 전략을 꾸준히 실험해 왔다는 점이다.
이번 떡국 나눔 행사는 그 연장선에 있다. 장을 보러 온 시민에게 따뜻한 한 그릇을 건네는 행위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시장과 시민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장치로 기능했다.
시장을 찾은 한 시민은 “물건을 사러 왔다가 떡국을 먹고 가니, 예전 동네 장터에 온 것 같아 정겹다”며 “아이와 함께 와도 부담이 없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체험은 재방문으로 이어지고, 재방문은 매출로 연결된다. 매출 증가는 다시 상인들의 참여 의지를 높이며,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2000그릇이 모자랄 정도였다는 사실은 이 선순환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전통시장은 단순한 유통 공간이 아니다. 지역 경제의 말단이자, 공동체 문화가 응축된 생활 인프라다. 최근 여러 지자체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정책 과제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성의 사례는 전통시장 정책이 단기적 보조금이나 시설 개선에 그쳐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상인 조직의 자발적 참여, 시민 체감형 프로그램, 지자체의 행정적 뒷받침이 맞물릴 때 비로소 변화가 가시화된다.
김 시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상인들을 응원한 행보 역시 상징적이다. 행정 수장이 시장을 ‘관리 대상’이 아닌 ‘함께 키우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활성화의 성패는 방문객 수보다 ‘머무는 시간’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떡국을 먹고, 장을 둘러보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경험은 체류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린다.
안성중앙시장의 변화는 거창한 개발 사업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지속 가능한 방식에서 출발했다. 그릇 수를 늘리는 데 필요한 것은 예산이 아니라, 시민과 시장을 신뢰하는 관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보라 시장은 글 말미에 “내년에도 전통시장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정책과 시민 참여가 함께 이어져야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적 호소에 가깝다.
700그릇에서 2000그릇으로 늘어난 떡국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상인들의 땀, 시민의 발걸음, 지자체의 지원이 겹쳐 만들어낸 숫자다.
올해 마지막 장날, 안성중앙시장에서 끓여낸 떡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전통시장의 가능성을 증명한 한 그릇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다음 장날을 향해 끓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저작권자ⓒ 이코노미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