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 연구단체, 시민과 함께 대안 모색

[이코노미세계] 경기도 하남시는 지난 10여 년간 수도권에서 가장 빠르게 팽창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미사·감일·위례 등 대규모 신도시가 속속 들어서며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주거·상업 환경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그러나 도시의 외형적 성장 이면에는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이 점차 희미해지는 역설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남시는 선사시대 유적에서부터 조선 시대 문화재, 근현대사의 흔적까지 두루 간직한 뿌리 깊은 역사 도시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지명 변경, 유적 훼손, 생활사 단절이 잇따르며 ‘역사 없는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하남시의회 의원연구단체 ‘하남시 역사의 정체성을 찾아서’가 21일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보고회에는 최훈종 대표의원, 박선미·임희도·강성삼 의원을 비롯해 연구용역 수행기관인 한국산업경제연구소 연구진,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해 연구 경과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다.
책임연구원 김장원 박사는 “하남시는 도시 전환기에 놓여 있다”며 “문화유산을 보존의 대상에만 가두지 말고 시민 참여와 문화 자원으로 연결해 지속 가능한 공공자산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발의 걸림돌이 아니라 도시 자산으로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회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 필요성이 부각됐다. 현재 하남시는 ‘향토유적 보호 조례’를 두고 있지만, 주로 보존과 보호에 국한돼 활용 측면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원들은 “보호에서 활용으로의 전환”을 공통된 화두로 제시하며, 조례 전면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훈종 대표의원은 “이번 연구는 단순한 학술적 결과물이 아니라, 급성장하는 도시 속에서 하남인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이라며 “탄탄한 연구 성과가 향후 정책 수립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단체는 최근 충남 부여·공주 등 역사문화 도시를 찾아 벤치마킹 활동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사례는 하남에 필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단순히 유적지를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브랜드화, 관광 연계, 시민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역사·문화유산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그것이다.
한국산업경제연구소는 이번 중간보고에서 5개년 실행계획을 제안했다. ▲국내외 우수사례 분석 ▲하남시 맞춤형 문화유산 활용 정책 도출 ▲역사·문화 홍보 마케팅 강화 전략 등이 담겼다. 장기적으로는 하남을 ‘역사문화도시’로 확립하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 보존·활용의 핵심을 ‘시민 참여’에서 찾는다. 연구진은 “시민 참여 기반 관리체계가 정착돼야 공동체 자긍심을 회복하고, 장기적 보존 전략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행정 주도의 정책이 아니라, 시민 일상 속 자산으로 전환하자는 제언이다.
실제로 하남시민 다수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가며, 과거 지역 정체성과의 접점이 약하다. 따라서 문화유산을 매개로 시민 공동체를 잇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남은 수도권 교통 요충지이자 성장 가능성이 큰 도시로 평가된다. 그러나 성장의 속도만큼 정체성 상실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도시 성장과 역사 보존이 충돌하는 지점을 넘어,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지적한다.
하남시의회 연구단체는 이번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정책 제안서를 마련해 의회와 시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결과 보고는 연말에 이뤄질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하남의 도시 비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남은 지금 ‘개발’과 ‘정체성’이라는 두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도시가 빠르게 커질수록 사라지는 이름, 잊히는 흔적, 흐려지는 뿌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자산일 수 있다. 하남이 역사도시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신도시와 공존하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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