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여름방학을 맞은 경기도미술관이 전시와 교육, 체험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가 직접 미술관을 기획하거나 자연 속 생물을 관찰해 작품으로 표현하고, 시민들이 현대미술의 흐름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프로그램이 잇따라 마련됐다.
특히 올해는 경기도미술관 개관 20주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미술관은 지난 2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소개하고,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세대별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품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생각을 나누는 ‘열린 미술관’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은 여름방학 기간 개관 20주년 특별전을 비롯해 전시 연계 교육, 어린이 대상 예술공유학교, 미술자료실 체험, 시민 공개 강좌 등을 순차적으로 운영한다. 전시와 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람객에게 보다 입체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여름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개관 20주년 특별전 '우리의 여름에게'가 있다. 오는 9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청년 작가 26팀이 참여한다.
전시는 하나의 장르나 형식에 머물지 않는다.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재료와 표현 방식을 활용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 관람객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최근 동시대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개관 20주년을 과거의 성과만 되짚는 기념행사로 구성하지 않고, 앞으로 미술관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세대와 예술적 흐름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년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고, 관람객에게는 현재 한국 미술의 움직임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5월 개막한 G뮤지엄커넥트 전시 '눈–길'도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여름 내내 계속된다. 이 전시는 작품을 한정된 전시장 안에만 배치하지 않고 미술관 외부에서 로비,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관람 동선에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미술관 건물에 들어서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품과 마주한다. 작품을 보기 위해 특정 전시실을 찾아가는 기존 방식과 달리, 미술관을 거니는 일상적인 움직임 자체가 감상의 과정이 된다. 전시 제목인 《눈–길》 역시 작품을 바라보는 ‘눈길’과 관람객이 이동하는 ‘길’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는 미술관의 로비와 복도, 외부 공간도 얼마든지 예술적 경험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시도다. 관람객은 정해진 순서대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자신의 속도와 동선에 따라 작품을 발견하고, 공간과 작품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여름에게'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도자 콜렉티브 알오에스(ROS)와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8월 9일과 23일 오후 2시에 각각 진행된다.
프로그램은 땅과 흙, 사람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참가자가 정해진 대본을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체험형 연극’ 구조를 도입했다. 강사의 설명을 듣거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했던 일반적인 미술교육과 달리, 참가자가 이야기의 일부가 돼 작품의 의미를 몸으로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도자는 흙을 재료로 삼아 인간의 손과 불, 시간이 결합돼 완성되는 예술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도자라는 결과물에만 주목하지 않고 흙이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이 자연의 재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관람객이 전시 작품을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의 문제로 연결해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술관이 전시와 교육을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작품 속 주제를 다시 생각하고, 자신만의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여름방학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시흥교육지원청과 협력해 운영하는 예술공유학교 '어린이 큐레이터의 팝업 미술관'이다.
시흥지역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7월 28일부터 9월 19일까지 총 4기로 나눠 운영된다. 어린이들은 가상의 미술관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미술관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경험한다.
미술관에는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뿐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작품을 보존·관리하는 전문 인력,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에듀케이터 등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참가 어린이들은 각각의 역할을 체험하며 하나의 전시가 관람객에게 공개되기까지 필요한 과정과 협업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단순히 정답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라 어린이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의 배치와 관람 방식 등을 고민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만든 미술관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력과 의사소통 능력, 협업 능력을 함께 기를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낯설게 느꼈던 어린이에게도 새로운 접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전시를 조용히 관람하는 수동적인 관객에서 벗어나 미술관을 직접 만드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지역의 문화 향유 기반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안산교육지원청과 협력하는 예술공유학교 '새롭게 보는 여름'은 자연과 미술을 연결한다. 안산지역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7월 28일부터 8월 14일까지 총 3기로 운영된다.
참가 어린이들은 세밀화 작가 이우만과 함께 화랑유원지에서 새를 관찰하는 탐조 활동에 나선다. 새의 생김새와 움직임, 서식 환경을 자세히 살펴본 뒤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를 창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새의 모습을 똑같이 그리는 기술만이 아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관찰을 통해 발견한 특징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자리한 안산 화랑유원지의 자연환경을 교육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술관 내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활동을 넘어 야외의 생태환경을 살펴보고, 그 경험을 다시 예술적 표현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자연 관찰과 창작을 결합한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미술을 생활 주변의 환경과 연결해 이해하도록 돕는다. 동시에 생명과 생태환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교육과 생태교육의 접점을 보여준다.
미술자료실에서는 8월 1일부터 30일까지 ‘빙고탐험’을 주제로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술 관련 책과 자료를 보관·열람하는 자료실을 놀이와 탐색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서가 곳곳에 숨겨진 미션을 찾아 해결하고 빙고판을 완성한다. 책을 읽거나 자료를 검색하는 전통적인 자료실 이용 방식에 게임 요소를 더해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일요일에는 컬러링 엽서 등을 활용한 상설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경기도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미술자료실은 전시 작품에 관한 배경지식을 얻고 예술에 대한 관심을 확장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일반 관람객에게는 다소 어렵거나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다. ‘빙고탐험’은 이러한 심리적 문턱을 낮춰 관람객이 서가를 직접 돌아보고 미술 자료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전시 관람 전후에 자료실 프로그램을 함께 이용하면 작품 감상도 보다 풍부해질 수 있다. 놀이를 통해 미술 용어와 작가, 작품을 접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자료에 관심을 갖도록 설계한 점도 특징이다.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시민 공개 강좌 ‘수요클럽’도 마련됐다. 매년 여름 운영되는 수요클럽은 7월 22일부터 8월 19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강좌에서는 미술관 전시를 이해하는 방법을 비롯해 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 비평의 언어, 생태미술 등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다. 각 분야 전문가가 강사로 참여해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과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한다.
현대미술은 작품의 형식과 재료가 다양하고 사회적·철학적 배경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렵게 느끼는 관람객이 적지 않다. 수요클럽은 이러한 거리감을 줄이고 시민들이 작품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작품을 평가하고 설명할 때 사용하는 ‘비평의 언어’를 비롯해 최근 미술계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생태미술까지 폭넓게 다룬다. 전시 관람에 필요한 기초 지식뿐 아니라 동시대 사회와 미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강좌다.
수요클럽은 만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지지씨멤버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사전 신청해야 한다.
경기도미술관의 이번 여름 프로그램은 연령과 관심사에 따라 참여 방식을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접할 수 있고, 어린이는 큐레이터와 창작자가 돼 미술관과 자연을 탐구할 수 있다. 시민들은 공개 강좌를 통해 현대미술을 읽고 해석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프로그램이 미술관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된다. 화랑유원지의 자연을 관찰하고, 교육지원청과 협력해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료실과 로비 등 미술관의 다양한 공간을 문화예술 활동의 무대로 활용한다.
이는 미술관의 역할이 소장품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사회와 교육기관, 예술가, 시민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예술을 매개로 경험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개관 20주년을 맞은 경기도미술관의 여름은 ‘보는 미술관’에서 ‘경험하는 미술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흙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고, 자연 속 새를 관찰하며, 가상의 미술관을 직접 만들어 본다. 서가의 미션을 풀거나 전문가와 현대미술을 토론하는 활동도 이어진다.
예술을 어렵고 특별한 사람만의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시민의 일상과 연결하는 것, 그리고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스무 살이 된 경기도미술관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시민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해 나갈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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