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의견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참여행정 강화
생활밀착형 예산 편성으로 시민 체감도 높인다
[이코노미세계] 지방자치의 성패는 결국 주민 참여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를 넘어 주민들이 직접 예산 편성과 사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참여형 지방자치'가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성시가 주민참여예산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단순히 주민 의견을 접수하는 수준을 넘어 주민들이 직접 토론하고 사업을 설계하는 '숙의테이블'을 운영하며 생활 속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26일 주민참여예산제 숙의테이블에 참석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읍·면·동별로 꼭 필요한 일들을 함께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숙의테이블은 주민참여예산제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개인이 사업을 제안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 현안을 논의하고 실현 가능한 사업을 만들어가는 집단 토론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숙의테이블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이 생활 속 문제를 함께 고민했다는 점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방식으로 각 읍·면·동에는 최대 3천만원의 예산 범위가 주어졌으며, 주민들은 이 범위 안에서 지역에 가장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금액만 놓고 보면 결코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예산 규모보다 사업의 실효성과 지역사회 파급효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와 보행환경 개선, 마을 환경 정비, 공동체 프로그램, 복지서비스 확대 등 주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업들이 논의 대상이 됐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단순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가능한 사업인가", "예산은 충분한가", "다른 주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가" 등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이뤄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주민참여예산제가 단순한 민원 창구가 아니라 지역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민주주의 학습 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제안하고 행정이 이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주민 간 의견 조율이 부족하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안성시가 올해 도입한 숙의테이블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김 시장 역시 "개인이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과 달리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실행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다양한 연령과 직업, 생활환경을 가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다른 시각이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인의 요구보다 지역 전체의 공익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사업의 우선순위를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면서 행정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숙의테이블은 앞으로 열릴 주민총회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김 시장은 "이렇게 해가면서 주민총회도 더욱 내실 있게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민총회는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주요 의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대표적인 주민자치 제도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참여율이 낮거나 형식적인 행사에 머무른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안성시는 사전에 충분한 숙의를 거친 뒤 주민총회를 운영함으로써 실질적인 주민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숙의 과정에서 발굴된 사업들은 주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한 만큼 실제 주민총회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정책이라는 점에서 사업 추진 이후 만족도 역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 시장은 이번 숙의테이블을 마친 뒤 "주민의 참여 속에서 더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들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행정 중심의 정책보다 시민이 일상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지방정부들은 대규모 개발사업뿐 아니라 골목길 정비, 교통안전, 복지서비스, 공동체 활성화 등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민의 의견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안성시는 앞으로도 주민들이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정책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민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다. 행정이 모든 답을 제시하기보다 주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며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지역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자산이 된다.
안성시가 첫발을 내디딘 주민참여예산 숙의테이블은 예산 규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3천만원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한 공간에서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김 시장은 숙의테이블에 함께한 주민자치위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바쁜 가운데 함께해 준 주민자치위원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주민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고, 주민의 아이디어가 지역의 변화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는다면 안성시의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의 새로운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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