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봄은 통상 생명이 움트는 계절로 인식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는 오히려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로 꼽힌다. 겨우내 억눌렸던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심리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 용인특례시가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전면에 내세우며 거리로 나섰다.
기흥구보건소는 3월 30일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에서 ‘생명사랑 캠페인’을 열고 시민들과 직접 마주했다. 단순한 홍보를 넘어, 자살 예방을 위한 지역 기반 대응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이번 캠페인은 3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자살 고위험 시기’를 겨냥해 기획됐다. 이 시기는 국내외 연구에서도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구간이다. 기온 상승과 함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는 반면, 개인의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 역시 동반 상승하는 복합적 환경이 작용한다.
용인시는 이러한 시기적 특성을 고려해 ‘사후 대응’이 아닌 ‘선제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단순히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방점을 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자살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캠페인의 장소로 선택된 보정동 카페거리는 젊은 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대표적 생활 공간이다. 행정기관 내부가 아닌 시민 일상 속 공간에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참여형 활동이 진행됐다. 생명존중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와 홍보물이 배부됐고, 정신건강 상담 전화 이용 방법도 안내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대화의 시작’이었다. 상담 전문가들이 직접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한 시민은 “평소에는 상담 전화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며 “이렇게 직접 안내를 받으니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단일 기관이 아닌 협력 구조로 운영됐다. 용인시자살예방센터가 주관하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용인센터와 보정동 카페거리 상인회가 함께 참여했다.
이 같은 협력 모델은 자살 예방 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보건·복지 기관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지역 상권과 시민 조직까지 포함하는 ‘생활권 중심 네트워크’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상인회의 참여는 의미가 크다. 카페, 음식점 등 일상 공간에서 근무하는 상인들은 지역 주민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초기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연결하는 ‘1차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용인시는 이번 캠페인을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4월에는 용인시처인장애인복지관과 포곡중학교, 5월에는 기흥무료급식소(기흥중앙교회) 등과 연계해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같은 일정은 대상별 맞춤형 접근 전략을 보여준다. 청소년, 장애인, 취약계층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각각의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주변의 작은 관심과 공감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살 예방의 핵심은 전문 치료 이전에 ‘연결’이다. 주변 사람의 한마디, 짧은 대화, 관심 어린 시선이 위기 상황을 막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의료적 접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용인시가 이번 캠페인을 통해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 지킴이’가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우울감이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은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와 자살예방상담전화는 24시간 운영되며, 익명성도 보장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주저한다. 사회적 낙인, 정보 부족, 접근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벽’을 낮추는 데 의미가 있다.
용인시의 이번 시도는 자살 예방을 ‘정책’에서 ‘문화’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행정기관의 역할을 넘어,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해법에 가깝다.
봄은 여전히 따뜻한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거리에서 시작된 작은 캠페인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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