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 이천시가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산업도시라는 기존의 정체성을 넘어 경기도의 주요 정책 기능을 품는 도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이천 이전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수원에 있던 경기도 산하 기관이 이천에 새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공공기관 한 곳의 소재지가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천시는 그 의미를 단순한 ‘주소 이전’에만 두지 않는다.
성수석 이천시장은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을 두고 “숫자로는 기관 한 곳의 이동이지만 저는 다르게 읽는다”며 “경기도가 이천을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적 명분을 넘어 해당 도시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이전 이후’가 중요하다. 기관과 직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고, 기관이 수행하는 정책과 연구가 지역 주민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이전 효과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천시가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천은 그동안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범주 안에서도 각종 규제와 지역적 한계를 동시에 안고 성장해 왔다. 특히 서울과 수원 등 수도권 핵심 지역에 주요 행정·공공 기능이 집중된 상황에서 경기 동남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공공기관과 정책 인프라의 혜택에서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 단위 정책기관이 이천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은 지역 입장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히 사무실과 직원이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관이 보유한 정책 기능과 전문인력, 연구 네트워크가 함께 이동한다. 지역에는 새로운 인적 교류가 생기고 해당 기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사업과 협력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특히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여성과 가족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성 시장이 “여성과 가족의 정책을 연구하는 경기도의 두뇌가 이제 이천에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 시장은 재단의 연구와 정책이 앞으로 이천 여성들의 삶과 이천 가족들의 일상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천이 경기도의 정책을 전달받는 지역을 넘어 정책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기능까지 품는 도시로 변화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직원들의 정착 문제다. 기관에는 ‘이전’이지만 직원 개인에게는 삶의 터전과 출퇴근 환경이 바뀌는 문제다. 가족과 주거, 교통, 교육 등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성 시장도 재단 이전 행사에서 이 부분을 주목했다. 축사 도중 객석에 앉은 재단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봤다고 했다. 기존 근무지였던 수원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직원들이다.
성 시장은 “낯선 도시로 일터를 옮긴 분들”이라며 “이천이 그분들에게 좋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 몫”이라고 했다.
이는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성패가 건물이나 사무공간을 마련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전 기관 구성원들이 새로운 지역을 생활 터전으로 받아들이고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어야 실질적인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천시 입장에서는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이전을 계기로 교통·주거·문화·교육 등 도시 전반의 정주 여건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성도 커졌다.
기관 이전을 지역 발전으로 연결하려면 ‘직장이 이천에 있는 것’을 넘어 ‘이천에서 생활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전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이천의 기존 도시 정체성과 새로운 공공 기능의 결합 가능성 때문이다.
이천의 대표적인 도시 이미지는 반도체다. 첨단산업과 기업 경쟁력이 도시 발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성 시장 역시 경기도에 전달한 지역 현안 가운데 ‘반도체 도시 이천의 미래’를 주요 과제로 언급했다.
여기에 여성·가족 분야의 정책 연구 기능을 가진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들어오면서 도시의 기능은 한층 다양해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 경쟁력만으로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일자리가 성장하는 동시에 그곳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의 주거와 돌봄, 가족, 여성, 교육 등 삶의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반도체 산업과 여성·가족 정책은 서로 동떨어진 영역만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하면 인구와 일자리 구조가 변하고, 이에 따라 보육과 돌봄, 가족정책 등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이 성장하는 도시와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를 동시에 만드는 것이 지방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이천 이전이 산업 중심의 도시 성장에 생활·복지·가족 정책이라는 또 하나의 축을 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성 시장은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 행사 이후 추미애 경기도지사와 별도로 만나 이천시 현안을 전달했다. 성 시장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이천시가 경기도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건의문에 담아 추 지사에게 직접 전달했다.
핵심은 이천의 미래 성장과 시민들의 일상에 직결되는 현안이다. 성 시장은 이를 “반도체 도시 이천의 미래,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에 닿는 일들”이라고 표현했다.
구체적인 건의 내용은 이번 자료에 담기지 않았지만, 이천시가 지역 현안을 시 자체 사업에만 한정하지 않고 경기도와의 협력 과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성 시장은 특히 “한 번의 면담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천시가 계속 두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현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광역자치단체 및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예산과 행정절차는 물론 각종 인허가와 광역교통망, 산업정책 등 기초자치단체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을 계기로 형성된 경기도와 이천시의 접점이 향후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협력 채널로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이제 관심은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이천 이전이 실제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느냐에 쏠린다. 공공기관 이전은 그 자체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기관이 지역사회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고, 기관의 전문성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가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여성과 가족 분야는 시민의 일상과 밀접하다. 저출생과 돌봄, 일·가정 양립, 여성의 경제활동, 가족 형태 변화 등 지방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상당수 사회문제가 여성·가족 정책과 맞닿아 있다.
이천시 입장에서는 경기도 차원의 전문 연구기관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는 점을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는 여성·가족 정책을 발굴하고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재단 역시 물리적인 소재지만 이천으로 옮기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와 접점을 넓힐 필요가 있다. 연구 결과가 정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시민들의 삶에서 체감될 수 있어야 한다.
성 시장이 “이천 여성들의 삶, 이천 가족들의 하루가 이 재단의 연구와 정책에 더 가까이 닿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기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성 시장은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을 설명하며 짧지만 상징적인 문장을 남겼다. “미래가 모이는 도시, 이천. 오늘 그 미래가 하나 더 모였습니다.” 이 말은 이번 이전을 바라보는 이천시의 시각을 보여준다.
반도체라는 산업적 기반 위에 공공기관과 정책 연구 기능이 더해지고, 이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하나의 이전만으로 도시의 위상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 기관과 지역사회의 연계를 확대하고, 새로운 정책 기능을 지역 발전으로 연결하면서 기관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도시 환경까지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와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주요 지역 현안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결국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이전은 이천에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은 출발점에 가깝다.
수원에 있던 경기도 산하기관 하나가 이천으로 옮겨왔다. 행정적으로 보면 한 기관의 소재지 변경이다. 하지만 이천의 시각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경기 동남부의 한 도시가 경기도 정책 기능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시장이 말한 ‘변두리에서 중심으로’라는 변화가 실제 시민들이 체감하는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이천 시대가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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