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공약은 시민과의 약속이다.' 8월 21일 수원컨벤션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수원시 시민평가단’ 1차 회의에서 관계자가 밝힌 말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었다.
민선 8기 수원시는 단순히 행정 내부의 자기점검을 넘어 시민 스스로가 공약 이행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번 시민평가단 출범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주민 참여형 거버넌스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수원시는 만 18세 이상 시민 가운데 참여 의사를 밝힌 지원자를 대상으로 전화 면접을 거쳐 최종 35명을 평가단으로 선발했다. 평가단의 역할은 단순한 자문을 넘어 공약 이행 현황을 직접 점검하고, 나아가 이행률을 높일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공약 집행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시민의 눈’으로 정책 과정을 감시하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수탁 운영을 맡아 제도적 전문성도 확보했다는 평가다.
첫 회의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과 시민평가단’을 주제로 한 특강을 시작으로 위촉장 수여, 분임 구성, 토의 등이 이어졌다. 이후 오는 9월 4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분임 토의·심의가 예정돼 있으며, 여기서 도출된 시민 의견은 공약 이행 정책에 직접 반영된다.
정치권의 공약(公約)은 종종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선거 과정에서는 화려한 약속이 남발되지만, 임기 중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시민평가단 제도는 이러한 불신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특히 수원시 사례는 공약의 이행률을 수치로만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이 과정에 참여해 질적 평가까지 병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흔히 직면하는 ‘성과 홍보’와 ‘실제 체감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장치로도 작동할 전망이다.
정치학자들은 “주민참여형 평가 제도는 공약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는 동시에,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심화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행정학적으로도 정책 집행 과정에 제3자 감시가 도입되면 관료적 폐쇄성을 낮추고, 부정·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민평가단에 참여한 한 시민은 “시장 공약이 단순히 문서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평가단이 보여주는 의견이 단순히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고, 시의 정책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하지만 한계도 지적된다. 첫째, 평가단의 대표성이다. 35명이라는 숫자가 과연 수원의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둘째, 정책 반영의 실효성이다. 시민 의견이 논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 행정 집행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제도의 성패를 가른다. 셋째, 지속 가능성이다. 특정 정권이나 시장 임기에 국한되지 않고, 제도적 장치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후속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수원시 시민평가단의 출범은 지방자치 행정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제 공약은 단순히 선거용 약속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점검하고 완성해가는 ‘공동의 과제’로 진화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의 말처럼, “공약은 시민과의 약속인 만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공약 이행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원칙이 지켜진다면, 이번 제도는 수원시뿐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정치적 신뢰가 흔들리고 행정의 불투명성이 문제로 지적되는 시대, 수원시의 시도는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공약 이행은 결국 권력자의 손이 아니라 시민의 눈과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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