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용인특례시 고기동 일대가 수개월째 갈등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고기동 사회복지시설 공사를 추진 중인 ㈜시원과, 공사차량 동선으로 인한 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용인특례시·지역주민·고기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의 충돌이 격화되면서다.
논란의 핵심은 분명했다. “좁은 도로, 보행로도 없는 초등학교 앞을 하루 약 460대의 대형 덤프트럭이 오가는 것이 가능하냐”는 문제였다.
사업자는 기존 공사 인가조건 중 ‘공사차량 우회 조건’을 사실상 없애달라고 요구했고, 시는 학생·시민 안전이 담보되는 대책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판단은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12월 5일, 행정심판위는 사업자 측이 제기한 간접강제 신청을 ‘기각’하며 용인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지역 개발과 시민 안전 사이의 균형, 지방정부의 재량 범위, 사업자 책임의 기준을 새롭게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쟁점의 시작은 사업시행자 ㈜시원은 올해 4월 행정심판위에 두 가지를 청구했다. ▲‘공사차량 우회 조건은 효력을 잃었다’며 삭제 요구(주위적 청구), ▲조건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변경을 거부한 용인시 처분을 취소해달라(예비적 청구) 등이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는 지난 6월 27일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주위적 청구(조건 자체 무효) ‘이유 없음’ 기각, ▲예비적 청구(조건 변경 관련) “주민·학생 안전 대책 마련 필요”라며 인용 등이다. 즉, 안전을 전제로 한 조건 조정은 가능, 그러나 사업자가 원하는 방식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취지였다.
이 판단 이후 용인시는 ㈜시원에 ▲대체 동선 확보 ▲보행 안전 확보 ▲환경 영향 최소화 등 구체적 안전대책을 제시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사업자 측이 내놓은 방안은 ‘고기초 앞 도로 이용, 신호수 배치’ 외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이는 공사차량이 오가야 하는 도로의 특성상 폭 6m 미만, 중앙선 없음, 보행로 없음, 대형 차량 교행 어려움을 고려할 때 안전에 대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용인시 판단이었다.
사업자 ㈜시원은 9월, “용인시가 6월 재결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행정심판위에 간접강제를 신청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용인시에 하루 3,900만 원의 배상금 부과 ▲6월 재결 내용을 강제로 이행하도록 명령, 그러나 행정심판위는 이번 신청을 전격 기각했다.
판단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용인시가 재결 취지에 따라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시는 사업자에게 안전 대책을 협의·제시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즉, 재결의 취지에 부합하는 절차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불이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재결 취지는 ‘그대로 조건 변경’이 아니라, 안전 확보 대책을 협의해야 한다는 의미” 6월 재결은 시에 인가조건을 그대로 바꾸라고 한 것이 아니라, ‘주민·학생 안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협의해 부담 부분을 적절히 변경하라’는 취지였다. 즉, 지방정부에 재량이 남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셋째, “안전 문제는 금전보다 우선되는 공공 가치” 행정심판위는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결정문에서 반복된 ‘안전 확보’라는 단어는 이번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사업자가 요구한 ‘강제 이행’은 법적·이행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결론 났다.
이에 용인특례시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상일 시장은 “시민과 학생 안전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정심판위 재결(6월) 이후 시는 지속적으로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사업자는 고기초 앞 도로 이용만을 고집해 학부모와 시민들의 우려를 키웠다.” “이번 기각 결정은 용인시 입장이 타당함을 인정한 결과다.”
시는 또한 이번 결정을 통해 대체 동선 확보, 공사차량 통행 제한, 보행 안전 강화 등을 포함한 협의 요구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행정심판위 결정은 단순히 한 개발사업의 이해관계 충돌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방정부 재량의 인정, ▲주민·학생 안전의 무게,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 ▲개발과 공공성의 조율 기준을 묻는 ‘사례판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루 수백 대의 공사차량이 초등학교 앞 좁은 도로를 지나는 구조적 위험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은, 앞으로 다른 지자체의 공사 인가·조건 변경에도 큰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용인시는 이제 구체적 대책을 끌어내기 위해 사업자와의 협의를 이어가야 하고, 지역 주민들은 안전을 전제로 한 개발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은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개발로 성장하지만,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안전이라는 가장 기본적 원칙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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