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공간, 인권의 현장으로” 재생 시동

[이코노미세계] 경기도 파주시의 성매매집결지 폐쇄 작업이 3년 만에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불법과 인권 유린의 현장을 시민에게 되돌려드리겠다”며, 그간 시민 모임 ‘길만사’와 함께 걸어온 과정을 소개했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시민들의 연대는 한국 지방도시에서 성매매집결지를 없애는 드문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파주시의 성매매집결지 폐쇄 논의는 2022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단순 행정 조치로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십 년간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집결지는 상인회·주민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일부 세력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김 시장은 “불법의 현장이었기에 누구나 당연히 동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지역과 유착돼 있었다”고 토로했다.
폐쇄 운동의 버팀목은 ‘길만사’였다. 성매매집결지 폐쇄와 성평등 사회를 지지하는 시민·학부모 모임인 길만사는 매주 ‘올빼미 활동’과 거리 캠페인을 이어왔다. 이들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성매매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 인권 유린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 파주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행정에 동력을 불어넣었고, 지역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市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지방정부가 장기간 협력한 사례는 드물다”며 “길만사의 활동이 행정의 한계를 보완했다”고 평가했다.
폐쇄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은 작지 않았다. 일부 업주 세력은 집단 민원을 제기하거나, 활동가들을 향한 직접적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연대가 그 벽을 허물었다. 김 시장은 “협박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나섰고, 함께 걸으며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현재 파주시는 집결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 중이다. 단순 철거가 아니라, 기억의 공간으로서 재생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피해 여성들의 증언과 기록을 아카이브화하고, 전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인권을 기리는 ‘인권 현장’으로 조성하자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시민 이모 씨(48·파주 운정)는 “이 공간이 다시 상업화되지 않고,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배우는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A 연구위원은 “집결지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보다, 그 기억을 통해 사회적 성찰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파주시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도 중요한 선례가 되고 있다. 국내에 여전히 30여 곳의 성매매집결지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파주의 모델은 ‘시민 주도-행정 협력형 폐쇄 정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단순한 단속이나 행정명령으로는 지속가능한 폐쇄가 어렵다”며 “지역 시민사회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파주시의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단순히 불법 공간을 철거한 사례를 넘어, 시민과 지방정부가 함께 만들어낸 인권 도시의 첫 걸음으로 평가된다. 김경일 시장의 말처럼 “이곳을 시민에게 온전히 돌려드리는 방법”이 앞으로의 과제다. 폐쇄 이후 재탄생 과정에서 파주가 어떤 도시 정체성을 만들어갈지 전국의 이목이 쏠린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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