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12월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구리시 노인복지관 일대에 따뜻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무대 위에서는 익숙한 가요 선율과 함께 박수가 이어졌고, 객석을 채운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오랜만의 설렘이 묻어났다. 연말을 맞아 열린 ‘제15회 구리 은빛축제’는 단순한 송년 행사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든 도시 구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되묻는 자리였다.
이번 은빛축제에는 노인복지관 회원 등 400여 명의 어르신이 참석했다. 공연과 축하 행사가 이어졌지만, 무대의 주인공은 전문 예술인이 아니었다. 노인복지관에서 실버교육을 수강해 온 어르신들이 직접 준비한 합창과 율동, 장기자랑이 축제의 중심을 이뤘다.
누군가는 무대에 오르기 전 손을 맞잡고 긴장을 풀었고, 누군가는 끝난 뒤 서로를 끌어안으며 “다음엔 더 잘하자”고 웃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닌 ‘참여형 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축제가 주목받은 이유는 하루짜리 행사 그 자체보다, 그 뒤에 놓인 과정 때문이다. 실버교육 수강생들이 준비한 공연과 작품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에 걸친 교육과 활동의 결과물이다. 서예, 캘리그라피, 민화 등 다양한 작품 전시 역시 어르신들의 배움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 멈춰 서서 “이 나이에 이런 걸 배울 수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을 건넸고, 작가가 된 어르신들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노인복지를 ‘보호’나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이다. 여가와 문화, 학습과 표현의 기회를 통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사회에서 복지는 더 이상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활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된다.
행사 현장에서 만난 구리시의회 신동화 의장은 어르신 정책을 둘러싼 의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의장은 “구리시의회에서도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예산이나 노인 일자리 사업 등 필요한 예산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단발성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 구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노인 일자리’와 ‘사회 참여’다. 단순히 소득 보전을 넘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신 의장은 “어르신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자라나는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고령층을 돌봄의 대상에서 지역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인식 변화로 읽힌다.
구리시는 이미 고령화의 문턱을 넘어섰다. 어르신 인구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복지 수요 확대와 재정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서 제기된 화두는 조금 다르다. ‘고령화는 부담인가, 기회인가’라는 질문이다.
신 의장은 “어르신들이 그동안 쌓아오신 경험과 지혜는 대체 불가한 자산”이라며, 이를 도시 경쟁력으로 연결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은빛축제 무대에 오른 어르신들의 모습은 고령화에 대한 통념을 흔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학습과 참여의 기회가 주어질 때 고령층은 여전히 성장 중인 존재였다.
전문가들 역시 같은 맥락의 지적을 내놓는다. 고령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의료비나 돌봄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아니라, 건강한 노년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지연’시키고,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느냐는 점이다. 문화·교육·일자리 정책이 결합된 노인복지는 장기적으로 도시 재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축제의 열기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돼야 한다. 실버교육 프로그램의 확대, 접근성 개선,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 연계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또한 노인복지가 특정 시설이나 단체에 국한되지 않고, 동네 단위로 확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은빛축제는 ‘잘 치른 행사’라는 평가를 넘어, 구리시가 고령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르신들이 존중받고, 경험과 지혜가 도시의 자산으로 순환되는 구조. 그것이 가능할 때,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연말의 하루를 밝힌 은빛 무대는 막을 내렸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구리시는 이 은빛의 에너지를 정책으로, 제도로, 일상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그 답이 구리의 다음 1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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