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 구리시가 배달·대리운전 등 이른바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 운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노동 환경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복지·상담·교육 기능까지 아우르는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플랫폼 노동의 확산 속에서 제도권 보호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이동노동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구리시의회는 3월 26일 열린 제358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이경희 의원이 발의한 ‘구리시 이동노동자 쉼터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원안 가결했다. 이번 조례는 이미 운영 중인 쉼터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체계적인 관리 기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리시는 앞서 2023년 10월부터 이동노동자 쉼터를 설치·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쉼터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인 관리 기준이나 제도적 근거가 미흡해,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한계가 지적돼 왔다.
이번 조례 제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결과다. 단순히 시설을 설치하는 수준을 넘어, 운영의 일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동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구체화하고 제도화했다는 점은 향후 타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조례안의 핵심은 쉼터의 기능을 단순한 휴식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복합적인 노동자 지원 공간으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휴식 및 소통 공간 제공 ▲이동노동자를 위한 교육·문화 활동 지원 ▲노무 및 취업 상담 등 맞춤형 복지 서비스 제공 등이 포함됐다.
이는 이동노동자의 특수한 노동 환경을 고려한 조치다.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등은 대부분 장시간 외부에서 근무하며 일정한 휴식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고용 형태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노동권 보호나 상담 지원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러한 점에서 쉼터를 단순한 ‘휴게 공간’이 아닌 ‘노동자 지원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정책적 진화로 평가된다. 특히 교육·문화 프로그램과 상담 서비스까지 포함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역량 강화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조례안은 쉼터 이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운영 기준도 담았다. 대표적으로 휴식 공간을 분리해 이용자의 편의를 높이고, 보다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했다.
또한 쉼터 운영을 비영리법인 등 전문 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행정기관 단독 운영의 한계를 보완하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이동노동자 지원은 노동·복지·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민간 전문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문 운영 체계가 도입될 경우 프로그램 다양화와 서비스 질 향상은 물론, 이용자 중심의 운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경희 의원은 조례 제안에 앞서 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를 언급하며 안전한 노동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대전 공장 화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다시는 이러한 인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례 제정을 통해 이동노동자 쉼터가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돼, 폭염과 한파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시설 운영을 넘어, 노동자의 안전과 존엄을 보장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폭염·한파가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이동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는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 설치와 지원 정책이 확산되는 추세다. 플랫폼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동노동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노동권 보호는 여전히 제도적 공백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법·제도 정비가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지자체가 생활 밀착형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시의 이번 조례 제정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정책적 시도로 볼 수 있다.
구리시의 이번 조례 제정은 단순한 시설 운영 기준 마련을 넘어, 노동의 형태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 구축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렀던 이동노동자에게 ‘쉼’이라는 기본 권리를 보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이 쉼터가 단순한 휴게 공간을 넘어,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시에 이러한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이동노동자가 보다 안전하고 인간다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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