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데 화장장 예약이 안 돼 사흘을 더 기다려야 했다. 가족도, 조문객도 모두 지쳐 있었다. 평택시에 거주하는 A씨의 말이다.
장례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평택시민에게 ‘마지막 길’은 유난히 길고 고단하다. 시 안에 화장시설이 없어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른바 ‘원정 화장’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3일장이 4~5일장으로 늘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평택시 종합장사시설 건립 사업이 본격적인 첫발을 뗐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12월 8일 종합장사시설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이 시작됐다고 밝히며, 장례 문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평택시는 인구 60만 명을 바라보는 경기 남부의 대표 도시다. 산업·주거·국제 교류의 거점으로 성장했지만, 장사(葬事) 인프라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현재 평택에는 화장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수원, 안성, 천안 등 인근 지역 화장장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수요 과잉이다. 수도권 화장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 예약이 밀리면 화장 일정이 며칠씩 지연되고, 장례식 역시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유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은 물론, 조문객과 직장·학교 일정까지 영향을 받는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장례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지금 당장 마주한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평택시가 추진하는 종합장사시설은 화장시설, 봉안당, 장례식장을 한 곳에 집적한 복합 인프라다. 장례 절차를 한 공간에서 마칠 수 있는 이른바 원스톱 장례서비스가 핵심이다.
이번 용역에서는 △사회·경제적 타당성 검토 △시설 규모 산정 △건물의 공간 배치 △운영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단순히 시설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수십 년간 시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겠다는 취지다.
평택시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관련 행정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2028년 착공,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평택은 ‘화장장 없는 대도시’라는 오명을 벗게 된다.
장사시설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도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 한때 장사시설은 ‘기피 시설’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필수 공공 인프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지자체 사례를 보면, 현대적인 디자인과 친환경 설계를 적용한 장사시설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며 운영되고 있다. 문화공원, 추모 공간, 휴식 공간을 함께 조성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장소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평택시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단순한 기능 시설이 아닌 시민 친화적 장사시설을 구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접근성, 경관, 환경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지를 선정하고, 주민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장사시설 건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합의다. 아무리 필요성이 명확해도, 주민 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업은 표류하기 쉽다.
평택시는 이번 용역 과정에서 시민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겠다고 밝혔다. 설명회, 공청회, 설문조사 등을 통해 우려와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설득’이 아니라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정책 추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정장선 시장 역시 “시민 불편을 줄이고, 누구나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장사시설이 조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도시의 품격은 삶의 시작뿐 아니라 삶의 끝을 어떻게 돌보는가에서도 드러난다. 장례는 개인의 일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책임이다. 평택시 종합장사시설 건립은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도시가 시민의 생애 전 과정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원정 화장으로 인한 불편, 늘어지는 장례 일정, 가족의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 사업이 지닌 가장 분명한 목표다. 계획대로 2030년 종합장사시설이 문을 연다면, 평택시민의 마지막 길은 지금보다 훨씬 차분하고 존엄해질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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