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모두에게 바쁘고 소중한 시간들인데, 그 시간을 남에게 내어주시는 여러분을 존경한다. 김보라 안성시장이 11일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건넨 이 말은 단순한 감사 인사를 넘어, 도시가 유지되는 방식에 대한 선언에 가까웠다.
김 시장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올 한 해 동안 안성을 따뜻하게 밝혀온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을 전하며, 수만 시간의 봉사로 지역을 지켜온 시민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했다.
이날 만남의 중심에는 숫자로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3만 시간, 또 다른 누군가는 1만5천 시간이라는 세월을 지역사회에 바쳤다. 안성시는 이들에게 금자봉과 은자봉을 수여했다. 그러나 표창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 시간들이 쌓아 올린 도시의 신뢰와 연대였다.
3만 시간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계산해도 10년이 넘는 시간이다. 생업과 가정, 개인의 삶을 병행하며 쌓아온 봉사의 시간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하나의 인생 궤적에 가깝다.
안성시 관계자들은 “자원봉사는 행사 지원이나 환경정비를 넘어 돌봄, 안전, 복지, 재난 대응 등 행정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영역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사회적 돌봄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존재는 공공서비스의 사각지대를 실질적으로 보완하는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예산 규모나 대형 개발 사업보다도, 시민들이 얼마나 공동체를 신뢰하고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안성의 자원봉사 현장은 이 같은 평가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행정이 제도를 설계하고 틀을 마련한다면, 자원봉사는 그 틀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게 만든다. 취약계층 돌봄, 독거노인 말벗, 지역 축제 지원, 재난 복구 현장 등에서 봉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공공’으로 움직여왔다.
김보라 시장이 봉사자들을 ‘영웅’이라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서지는 않지만, 도시가 흔들리지 않도록 바닥을 단단히 받쳐온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수여된 금자봉·은자봉은 장시간 봉사에 대한 상징적 예우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는 “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라는 말이 더 자주 나온다.
안성시의 자원봉사 정책은 최근 들어 ‘동원’이 아닌 ‘동반’의 개념으로 옮겨가고 있다. 단순히 인력을 모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봉사자의 역량과 경험을 존중하고 활동 이후에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전문성을 가진 봉사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분야를 세분화하고, 장기 봉사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교육을 병행하는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자원봉사는 흔히 ‘선택적 미담’으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안성의 사례는 봉사가 도시의 구조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시민 네트워크,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돌봄의 손길은 행정 시스템만으로는 구축하기 어렵다.
실제로 재난·재해 발생 시 가장 먼저 현장을 지키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역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지형과 주민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외부 지원보다 더 신속하고 정밀하게 움직인다.
김보라 시장은 글을 통해 “감사 인사도 드리고, 성장도 드렸다”고 밝혔다. 이 문장은 자원봉사를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그 마음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문화가 있을 때 비로소 ‘살 만한 도시’가 된다. 안성의 자원봉사자들이 쌓아온 수만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번 만남은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들의 헌신을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공동체의 의미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안성의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시간의 무게는, 지방자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히 가리킨다. 성장과 개발의 속도만큼이나, 서로를 돌보는 힘이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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