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분당 일부 단지가 ‘서울공항 고도제한’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형평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같은 분당 안에서도 비행안전구역에 포함됐느냐에 따라 사업성 격차가 벌어지면서, 주민들의 박탈감과 재산권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이서영 의원은 지난달 26일 경기도의회 성남상담소에서 경기도·성남시 관계자와 장미마을·탑마을 등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 대표들과 정담회를 열고, 고도제한 완화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회의는 재건축 기대와 규제 현실 사이에서 답을 찾기 위한 첫 공식 테이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분당은 1990년대 초 조성된 대표적 1기 신도시다. 준공 30년을 넘긴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구조적 노후화와 주거환경 개선 요구가 본격화됐다. 정부 역시 1기 신도시 정비를 국정 과제로 제시하며 특별법 제정과 정비계획 수립을 병행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공항 인근 일부 단지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른 비행안전구역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해당 구역에서는 일정 고도 이상 건축이 제한된다. 고밀 개발이 핵심인 재건축 사업에서 층수 제한은 곧 사업성 저하로 직결된다.
이서영 의원은 정담회에서 “분당 재건축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서울공항 인근 고도제한 구역에 포함된 단지들은 층수 제한으로 인해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1기 신도시임에도 입지에 따라 재건축 혜택이 달라지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재산상 손실 우려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도제한 구역에 속한 단지들은 일반 구역 대비 층수 상향이 어렵고, 이에 따라 가구 수 증가 폭이 제한된다. 분양 수익 감소는 곧 조합원 추가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같은 분당인데 하늘 아래 운명이 갈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논의의 핵심은 ‘항공학적 검토’였다. 항공학적 검토는 비행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조물 높이 제한 완화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평가하는 절차다. 단순히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 과학적·기술적 검증을 통해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 의원은 “방안을 나열하는 접근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객관적인 항공학적 검토를 통해 현재 비행안전 여건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항공학적 검토를 최우선으로 실시해 명확한 근거를 확보해야만 고도제한 완화 논의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감(感)’이나 정치적 요구가 아닌, 데이터와 기술에 기반한 협의로 전환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된다. 군사시설 보호라는 공익과 주민 재산권 보호라는 사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객관적 검증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접점이 될 수 있다.
성남시는 그간 내부적으로 검토해 온 고도제한 완화 방안을 이날 공개했다. 주요 내용은 ▲선회접근 구역 내 고도제한 완화(CMDA 선회접근 최소강하고도 조정) ▲선회접근 절차 미운영 활주로에 따른 완화 ▲특별 선회접근 절차 수립·적용 등 세 가지다.
첫째는 선회접근 시 적용되는 최소강하고도 기준을 조정해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둘째는 현재 운영되지 않는 선회접근 절차를 전제로 고도제한을 재산정하는 시나리오다. 셋째는 별도의 특별 선회접근 절차를 마련해 비행 경로를 조정하는 방안이다.
다만 이들 방안은 모두 군 당국과의 협의, 항공 안전성 검증, 관련 법령 해석 문제 등 복합적 과제를 안고 있다. 단순 행정 판단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방안 제시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항공 안전에 대한 명확한 기술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행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또 다른 기대고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주민들은 “항공학적 검토 결과가 공개되고, 그에 따른 기준이 투명하게 제시돼야 납득할 수 있다”며 “재건축이 특정 단지의 특혜나 소외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성남시 관계자는 항공학적 검토 실시 방안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경기도 역시 시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일정이나 추진 방식은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고도제한 문제는 단순한 층수 논쟁을 넘어 분당의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건축이 지연되거나 사업성이 크게 떨어질 경우, 인근 판교·위례 등 신흥 주거지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서영 의원은 “고도제한 문제는 단순한 규제 개선을 넘어 분당의 도시 경쟁력 회복과 주민 삶의 질이 걸린 사안”이라며 “항공학적 검토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완화 논의가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그동안 5분 자유발언과 정담회 등을 통해 고도제한 해제와 재건축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특히 고도제한 완화를 재건축 활성화의 ‘최우선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공공기여 부담 경감 문제 역시 병행 과제로 다뤄왔다.
분당 재건축은 이제 속도전이 아닌 정밀전의 단계에 들어섰다. 군사시설 보호라는 국가 안보 가치와 노후 주거지 개선이라는 주민 요구 사이에서,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항공학적 검토가 실제로 추진될 경우, 그 결과는 분당뿐 아니라 전국 군공항 인접 지역 재건축 정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늘의 규제’를 넘기 위한 첫 관문이 열릴지, 분당의 시선이 서울공항 상공을 향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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