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인접 지자체와 협의 없이 계획 발표
- “교통대책 선행 없는 주택공급 중단해야”
[이코노미세계] 정부가 과천 경마장과 방첩사 이전 부지에 약 9,800가구 규모의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남부 교통체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인접 도시인 의왕시를 비롯해 안양·과천 일대가 이미 만성적인 교통 혼잡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실효성 있는 교통대책 없이 대규모 주거단지가 추가될 경우 시민들의 일상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성제 의왕시장은 3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계획은 과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왕·안양·과천을 관통하는 수도권 남부 교통체계 전체에 중대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현직 기초단체장이 중앙정부의 주택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지역이 체감하는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의왕시는 지리적으로 수도권 남부 교통의 ‘통과 지점’에 놓여 있다. 의왕시민 상당수는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을 이용하거나 과천·사당·강남을 잇는 주요 도로축을 통해 출퇴근한다. 그러나 이 노선들은 이미 출근 시간대 혼잡률이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여기에 약 1만 가구에 달하는 신규 주거단지가 들어설 경우, 교통 수요 급증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의왕시의 판단이다.
김 시장은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출퇴근 시간의 급격한 증가, 대중교통 혼잡률의 구조적 악화, 상시적인 도로 정체, 물류·응급·생활 교통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교통 혼잡이 장기화될 경우 지역 경쟁력 저하는 물론, 시민들의 삶의 질 전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문제는 절차다. 의왕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정부는 이번 주택공급 계획과 관련해 인접 지자체와 충분한 교통영향 검토 결과를 공유하거나 공식적인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광역 교통체계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사실상 생략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통상 5,000가구 이상 규모의 개발사업은 광역 교통영향평가와 지자체 간 협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발표가 먼저 이뤄지고, 교통대책은 사후적으로 논의되는 모양새다.
김 시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소영 의원을 향해서도 “이번 계획이 인접 도시 시민들에게 미칠 교통 파급효과를 면밀히 살피고, 중앙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비판을 넘어 정치권의 책임론까지 확장되는 대목이다.
지역 정치권 안팎에서는 “주택공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앞세워 지역 주민의 생활권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차원에서 광역 교통대책을 전제로 한 조건부 추진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의왕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부에 네 가지 요구사항을 분명히 제시했다. ▲경마장·방첩사 이전 및 주택공급 계획의 전면 재검토 ▲의왕·안양·과천을 포함한 광역 교통영향평가의 선(先)실시 및 결과 공개 ▲4호선 수송력 증강, GTX-C 연계, 신규 노선과 환승체계 확충, 광역버스 증편 등 구체적 교통대책 제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전까지 주택공급 추진 중단이 그것이다.
특히 김 시장은 “주택 공급 역시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 여건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닌 ‘조건부 수용’에 가깝다. 교통대책이 전제된다면 협의의 여지는 열어두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은 공급 속도와 물량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대규모 주거단지가 도시의 수용 능력을 초과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교통 인프라는 한 번 병목이 생기면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의왕시는 앞으로 과천시·안양시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시민 권익을 지키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위례과천선 의왕 연장 등 장기적인 광역교통 개선 방안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수도권 주택 정책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얼마나 빨리 짓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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