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도 내 공공기관을 사칭한 ‘노쇼(No-show) 사기’가 급증하면서 행정 신뢰를 흔드는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문화 관련 기관까지 범죄 대상이 확대되면서 단순한 경제 피해를 넘어 공공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학수 의원은 11월 7일 문화체육관광국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보다 체계적인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발생한 공공기관 사칭 노쇼사기는 총 577건, 피해액은 약 79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경기도가 피해 규모와 건수 모두에서 전국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노쇼사기는 주로 공공기관이나 기업 관계자를 사칭해 음식·상품 등을 대량 주문한 뒤 나타나지 않거나 결제를 회피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단순 예약 취소를 넘어 상품권 구매를 요구하거나 행사 참여를 빙자하는 등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체감 위기감이 상당하다. 이 의원은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공공기관 주문전화는 의심부터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는 공공기관이라는 신뢰 자체가 범죄 도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단순 행정기관을 넘어 문화·관광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년간 경기도청 및 산하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사칭 노쇼사기 피해는 총 32건이며, 이 가운데 13건이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기관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기관에는 경기문화재단, 경기콘텐츠진흥원, 한국도자재단 등 도민 일상과 밀접한 문화기관이 다수 포함됐다. 이는 문화행정 영역이 새로운 범죄 표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에만 3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직원을 사칭해 설명회 참석을 유도하거나, 재단 명의로 상품권 구매를 요구하는 사례까지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노쇼’ 수준을 넘어 조직적 사칭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되는 지점은 공공기관 내부 정보 관리 문제다. 이 의원은 일부 문화기관 홈페이지에 담당자 실명과 연락처가 그대로 공개돼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사칭범이 직원 이름과 직책을 정확히 언급하며 접근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러한 정보 노출은 범죄의 ‘신뢰 장치’로 작용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실존 인물의 이름과 직책이 제시될 경우 이를 의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직원 정보 노출이 곧 범죄 매뉴얼이 되는 상황”이라며 전수 점검과 익명화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관 간 대응 체계의 부재다. 유사한 피해가 여러 기관에서 동시에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유하거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사례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는 개별 기관 단위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 수법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보 공유가 늦어질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간 기업에서는 이미 사기 유형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실시간 공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대응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가 나온다.
행정 대응 역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이번 사안은 단순한 범죄 대응을 넘어 공공행정의 신뢰 회복 문제로 이어진다.
이학수 의원은 “문화체육관광국이 중심이 돼 기관별 재발 방지 매뉴얼을 마련하고, 유사 사례를 신속히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원 정보 공개 기준 재정비 ▲사칭 대응 매뉴얼 표준화 ▲기관 간 실시간 정보 공유 ▲소상공인 대상 예방 안내 강화 등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공공기관의 이름은 그 자체로 신뢰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 그 신뢰가 범죄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노쇼사기 문제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라는 더 큰 문제를 내포한다. 시민이 공공기관의 전화를 의심하는 순간, 행정의 기반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편적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대책이다. 정보 공개와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 기관 간 협력 체계, 그리고 선제적 범죄 대응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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