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기도가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을 무대로 역사 체험형 축제를 선보인다. 단순한 유적 관람을 넘어 ‘몸으로 기억하는 역사’라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면서, 그동안 지적돼 온 콘텐츠 부족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4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 약 두 달간 열리는 ‘2026 세계유산 남한산성 낙(樂) 페스타’는 병자호란 발발 390주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해 도민이 직접 체험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남한산성이 지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일상 속에서 체감하도록 설계된 것이 핵심이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에도 ‘명성에 비해 체감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유적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는 별개로, 방문객이 이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이번 페스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경기도는 기존의 정적인 관람형 프로그램을 과감히 탈피하고, 교육·체험·역사·환경을 결합한 4대 핵심 테마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재구성했다.
행사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남한산성을 ‘보존된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람객은 더 이상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역사 속 주체로 참여하게 된다.
행사의 중심축 중 하나는 행궁 일원에서 상설 운영되는 ‘행궁교육체험’이다. 이 프로그램은 남한산성을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닌 생활과 문화의 공간으로 확장해 이해하도록 돕는다.
참가자들은 조선시대 전통 복식을 착용하고, 성곽 축성 원리를 직접 체험한다. 단순한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쌓고 몸으로 익히는 방식이다. 이는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과 어린이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전통 서책 제본과 서표 제작 체험을 통해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기록과 보존의 가치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는 문화적 자산임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남한산성의 진짜 매력은 ‘군사적 요충지’라는 정체성에 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OUV 탐험대’다.
참가자는 병자호란 당시 성을 지키던 수어사의 역할을 맡는다. 단순한 역할극을 넘어, 성곽 곳곳을 이동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 해설사의 설명이 더해지며 역사적 맥락이 살아난다. 동시에 봉술, 검술, 궁술 등 전통 무예 시연과 체험이 결합되면서, 남한산성의 군사적 기능과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이러한 ‘참여형 서사 구조’는 기존 역사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된다. 관람객은 더 이상 정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상황을 직접 체험하며 이해하게 된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병자호란 390주년을 기념하는 신규 프로그램 ‘그해, 1636년을 기억하다’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스토리텔링 기반의 몰입형 콘텐츠로 구성됐다. 전문 스토리텔러와 함께 성곽을 걷는 도보 투어는 공간과 사건을 연결해 입체적인 역사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남한산성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책이나 강의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공간 기반 역사 교육’의 강점을 극대화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역사 콘서트는 남한산성을 정치·군사·문화 등 다각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는 단일 사건 중심의 서술을 넘어, 복합적 역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페스타는 역사 체험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환경 프로그램도 주요 축으로 포함됐다. ‘남한산성 기대해’ 프로그램은 전통 복식을 입고 성곽 주변 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라스틱 사냥대회’와 업사이클링 공예 체험을 결합했다.
특히 버려지는 양말목을 활용한 공예는 자원 순환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세계유산 보존이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시도는 문화유산 정책이 환경 문제와 결합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사는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행궁교육체험은 매주 금요일과 주말, 공휴일에 별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OUV 탐험대와 성곽 도보 투어는 프로그램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대중성과 체험의 완성도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창섭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은 “남한산성을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도민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축제 개최를 넘어, 문화유산 정책의 방향 전환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그동안 세계유산은 ‘보존’ 중심의 정책 틀 안에서 관리돼 왔다. 그러나 이번 페스타는 ‘활용’과 ‘참여’를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체험형 콘텐츠, 환경 프로그램, 스토리텔링 결합 등은 향후 다른 문화유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6 남한산성 낙 페스타’는 단순한 지역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실험이자, 문화유산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390년 전의 역사를 오늘의 시간 속으로 끌어온 이번 시도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 가능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지는 향후 운영과 평가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남한산성이 더 이상 ‘조용한 성곽’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그곳은 걷고, 체험하고, 기억하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okn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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