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그냥 걸려 있는 천 한 장’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 현수막 앞을 지나치며 상처받고, 다른 누군가는 혐오를 ‘표현의 자유’로 착각한다. 그리고 도시는 점점 분열의 언어로 채워진다.
수원특례시가 최근 도심 곳곳에 등장한 혐오 표현 현수막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한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혐오·비방 목적의 현수막 금지와 정당 현수막 규제 근거를 명시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현장 적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28일 개인 SNS를 통해 “특정 지역과 출신 국가, 성별, 이주민을 향한 노골적 차별 문구가 도시 공간을 오염시키고 있다”며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문구가 공공공간에 걸리는 현실은 더 이상 정상이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원뿐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정치적 혐오 표현, 특정 집단 비하, 이주민 반대, 혐오적 이념 선전 등이 반복되는 현수막은 단순 광고물이 아니라 전파되는 감정 자극형 메시지라는 점에서 사회적 위험성을 지닌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지 시각적 오염이 아닌 혐오 감정의 제도화, 정상화 과정으로 본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 연구팀은 최근 리포트에서 “도시 공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혐오 메시지는 시민의 감정과 인식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며, 결국 사회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분석했다.
이재준 시장의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의 생활공간은 상호 존중이 기본이어야 한다”며 “혐오는 ‘토론’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번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회가 혐오 현수막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최초 사례라는 점이다.
행안위가 통과시킨 개정안을 본다면 ▲ 혐오·비방 목적 현수막 금지 ▲ 정당 현수막도 일반 옥외광고 기준 적용 ▲ 불법 현수막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 등이다.
그동안 정당 현수막은 공직선거법 적용 예외 조항에 따라 삭제 조치가 사실상 어려웠다. 이번 개정안으로 지방정부가 거리 정비 권한을 확보하면서, 제한 없는 정치 메시지 난립 구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수원시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이라도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는 이미 지난 11월 18일 시행된 행정안전부 ‘금지광고물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혐오 표현 현수막에 대해 즉각적인 시정 명령과 철거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이 시장은 “지자체는 시민의 공공 공간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며 “법적 근거가 강화된 만큼 현장 적용도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법안과 지자체 대응은 단순한 광고물 규제가 아니다. 거리에 어떤 언어를 허용할 것인가, 공공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도시는 어떤 가치 위에 설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다.
혐오가 정치의 도구로 소비되는 시대, 도시가 먼저 ‘언어를 정비하는 일’을 선택했다. 이 선택이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문화와 도시 문명의 변곡점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규제 논란으로 남게 될지는 이제 시민과 행정, 입법부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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