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공공기관의 인공지능(AI) 활용이 단순한 문서 작성 지원을 넘어 업무 체계 자체를 바꾸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경기평택항만공사가 직원들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계약·여비·회계 관련 규정과 지침을 하나로 모아 AI가 답변하는 사내 통합 질의응답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전문 개발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직원이 자연어로 필요한 기능을 설명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방식을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경기평택항만공사는 전 부서가 참여한 ‘AI 활용 업무 개선방안 공모’ 평가 결과, 경영기획실이 제안한 ‘바이브 코딩 기반 사내 통합 질의응답 시스템 자체 구축’을 최우수 과제로 선정했다. 공사는 제안 내용을 구체화해 2026년 하반기 중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하고 현장 업무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의 출발점은 직원들이 일상 업무에서 겪는 작지만 반복적인 불편이다. 계약을 체결하거나 출장 여비를 정산하고 회계 업무를 처리하려면 관련 규정과 내부 지침을 찾아 정확한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자료가 업무별·부서별로 나뉘어 있거나 개정된 규정과 기존 자료가 함께 관리되면, 필요한 조항을 찾고 적용 기준을 판단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공사가 구상하는 통합 질의응답 시스템은 이런 행정자료를 한곳에 모은 뒤 직원의 질문에 AI가 관련 내용을 찾아 답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직원이 검색어를 여러 차례 바꾸며 문서를 일일이 확인하는 대신 일상적인 문장으로 질문하면, 시스템이 해당 업무에 필요한 규정이나 지침을 제시하는 구조다.
예컨대 출장 여비 지급 기준이나 계약 업무에 필요한 내부 절차를 질문하면 관련 자료를 토대로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는 식이다.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되면 신규 직원이나 해당 업무를 처음 맡은 직원도 규정을 찾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담당자의 경험에 따라 업무 처리 속도와 정확도가 달라지는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공사는 기대하고 있다.
공사가 시스템 구축 방식으로 선택한 바이브 코딩은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하거나 수정하도록 하는 개발 방식이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구현하려는 기능과 업무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AI의 도움을 받아 시제품이나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이번 과제는 외부 개발업체에 모든 과정을 맡기는 일반적인 정보화 사업과 달리, 공사 내부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시스템 구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장의 요구를 가장 잘 아는 직원이 필요한 기능을 설계하고 시험하면서 업무에 맞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개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업무 방식이나 규정이 바뀔 때마다 외부 업체에 수정을 요청하는 구조에서는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들 수 있다. 반면 내부 직원이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일정 부분을 직접 개발하고 보완할 수 있다면 변화한 업무 환경을 시스템에 비교적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다.
다만 ‘자체 구축’이 곧 모든 개발 과정을 직원만의 힘으로 처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업무 시스템은 개인정보 보호, 정보보안, 접근 권한 관리, 자료의 최신성 유지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바이브 코딩으로 초기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전에는 프로그램의 안정성과 보안 수준, 답변의 정확성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공사는 이번 제안이 행정 처리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복적인 규정 검색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모든 직원이 동일한 자료를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해 행정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모는 특정 부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공사 전 부서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행정업무 효율화뿐 아니라 대민 서비스 개선과 안전관리 강화 등 공사 업무 전반에 AI를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제가 제안됐다.
공사는 심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위원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외부위원으로는 공공 AI 정책과 민간 AI 산업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평가위원회는 각 제안의 개선 효과와 업무 활용성, 실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현장 적용 가능성이 높은 과제를 선정했다.
공공기관의 AI 사업은 기술적 참신성만으로 성공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도입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AI를 적용한 뒤 기존 방식보다 업무가 얼마나 빨라지고 정확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평택항만공사가 이번 평가에서 개선 효과와 활용성, 실현 가능성을 함께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디어의 화려함보다는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무게를 둔 것이다.
최우수 과제가 계약·여비·회계 등 공통 행정업무를 대상으로 삼은 것도 적용 범위와 활용 빈도를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정 부서에서만 사용하는 기능보다 다수 직원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AI를 먼저 적용하면 도입 효과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운영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은 향후 대민 서비스나 항만 안전관리 등 다른 분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공사는 이번 공모를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인 업무혁신 체계로 정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AI 도입 전후의 업무시간과 처리 정확도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정량적 핵심성과지표(KPI)를 마련할 계획이다.
AI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실제 업무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수치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규정과 지침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 질문에 대한 답변의 정확도, 시스템 이용 빈도, 직원 만족도 등이 향후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같은 성과관리는 공공기관의 AI 사업이 시범운영이나 홍보성 행사에 머무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효과가 확인된 기능은 확대하고, 이용률이 낮거나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능은 원인을 분석해 보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 역량 강화 교육도 병행한다. 시스템을 만들어 놓더라도 직원들이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AI 답변을 무조건 신뢰하면 기대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AI가 어떤 방식으로 답변을 만들고 어떤 한계를 갖는지 이해해야 업무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같은 내용이라도 질문의 구체성과 표현 방식에 따라 AI의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 직원 교육에는 업무 목적에 맞는 질문 작성법과 답변 검증 방법, 개인정보·내부자료 처리 원칙 등이 포함돼야 한다. 기술 도입과 구성원의 활용 능력을 함께 높여야 실질적인 업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스템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답변의 신뢰성이다. 생성형 AI는 질문의 뜻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문장으로 답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자료가 부족하거나 질문이 모호하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계약과 회계 업무는 작은 오류도 행정 절차의 하자나 예산 집행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AI의 답변만으로 업무를 최종 처리하기보다 관련 규정의 명칭과 조항, 개정 시점, 원문 위치를 함께 제시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담당자가 AI 답변의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료의 최신성도 관건이다. 법령과 내부 규정, 업무지침이 개정됐는데 기존 자료가 시스템에 남아 있으면 AI가 과거 기준으로 답변할 수 있다. 자료별 관리 책임자를 정하고 개정 내용을 정기적으로 반영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폐지된 규정과 현행 규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능도 필요하다.
정보보안과 접근 권한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사내 행정자료에는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내부 정보나 개인정보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자료까지 AI가 검색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직급과 담당 업무에 따라 접근 범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을 사전에 정해야 한다. 질문과 답변 기록을 얼마나 보관할지, 민감한 정보가 입력됐을 때 어떻게 차단할지도 검토 대상이다.
바이브 코딩으로 작성된 프로그램 코드의 품질을 점검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AI가 만든 코드는 빠르게 기능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오류나 보안 취약점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실제 업무 적용에 앞서 충분한 시험 운영과 보안 점검을 거쳐야 하는 이유다.
경기평택항만공사의 이번 시도는 내부 행정의 작은 불편에서 출발했지만, 최종 목표는 도민과 항만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반복적인 자료 검색과 단순 확인 업무를 AI가 보조하면 직원들은 정책 기획이나 현장 대응처럼 사람의 판단이 더 필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행정 처리 기준이 통일되고 내부 문의에 대한 답변 속도가 빨라지면 부서 간 협업도 원활해질 가능성이 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거나 업무 인수인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필요한 규정과 절차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사내 질의응답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민 서비스와 안전관리 분야의 AI 과제도 단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다만 도민을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로 확대할수록 답변 오류가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만큼, 내부 시스템에서 정확성과 안정성을 먼저 입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관건은 올 하반기 구축될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자주, 정확하게 활용되느냐다. 직원들이 기존 문서 검색보다 편리하다고 느끼고, AI가 제시한 답변의 근거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사가 예고한 KPI 관리와 직원 교육이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금규 경기평택항만공사 사장직무대행은 “AI를 활용한 업무혁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현장의 실질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도민에게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공공플랫폼 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경기평택항만공사의 도전은 거창한 외부 사업보다 직원들이 매일 마주하는 규정 검색과 행정 처리에서 시작됐다. AI가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도록 돕는 업무 보조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올 하반기 시스템 구축 이후 공개될 업무시간 단축과 처리 정확도 개선 결과는 이번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공사가 현장의 아이디어를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하고, 이를 도민 서비스 향상으로 연결한다면 이번 시도는 다른 지방 공공기관의 AI 업무혁신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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