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규제 견뎠던 주민들 “이제 와서 삶의 터전 내놓으라 하나”
최현덕 남양주시장 “대토·이주자단지·정당한 보상 정부에 적극 전달”
[이코노미세계]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남양주 도심역 인근 69만평을 새로운 공공주택지구로 발표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적인 주택난 해소라는 정책적 필요성 이면에서 오랫동안 삶의 터전을 지켜온 원주민들의 재산권과 주거권, 이주대책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새로운 지역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해당 지역에는 수십 년은 물론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주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로 재산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온 상황에서 다시 공공주택지구 지정에 따른 강제수용 가능성에 직면하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박탈감도 상당하다는 게 지역사회의 분위기다.
최현덕 남양주시장은 지난 8월 13일 강제수용 대상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대책위원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간담회에는 박병열 위원장 등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부분 와부·덕소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주민들이다. 일부는 수대를 이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과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공공주택지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공개와 주민과의 협의, 합리적인 보상·이주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갈등의 출발점은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이다. 최 시장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13일 부족한 주택 공급을 위해 남양주 도심역 인근 69만평을 새로운 공공주택지구로 발표했다.
주택 공급 확대는 수도권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주택지구를 조성하려면 기존 토지와 주택에 대한 수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 대상지 주민들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생활 터전을 떠나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책위 대표들은 와부·덕소 일대에서 오랜 기간 생활해온 주민들이다. 최 시장은 이들 가운데 몇 대에 걸쳐 수백 년 동안 집안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 입장에서 토지는 단순한 부동산이나 재산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아온 집이 있고, 오랜 세월 형성한 이웃 관계와 생활 기반이 존재한다. 농사를 짓거나 생업을 이어온 주민에게는 토지 자체가 경제적 기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규모 공공개발에서 보상 문제 못지않게 원주민의 생활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최 시장 역시 “누군지 모를 입주예정자들을 위해 오랜 세월 터 잡고 살아온 우리 지역 주민들이 다른 도시로 내쫓겨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정책의 공익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주민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해당 지역이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다는 점도 자리 잡고 있다.
최 시장은 주민들의 상황을 전하면서 그동안 정부가 지역을 그린벨트로 묶어 주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는데 다시 강제수용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민들의 시각에서는 개발을 제한할 때는 공익을 이유로 재산권 행사를 제한받았고, 이제 개발이 필요해지자 다시 공익을 이유로 토지 수용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이번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단순히 토지가격을 산정해 보상하는 차원을 넘어 그동안 주민들이 감내했던 각종 규제와 생활상의 불편까지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평생을 한 지역에서 살아온 고령 주민들에게 이주는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 생활권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삶의 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개발 자체의 찬반 문제를 넘어 자신들의 목소리가 사업 추진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불가피하게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면 이에 합당한 대책이 마련되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들의 반발을 더욱 키우는 대목은 일부 주민들이 과거에도 공공사업으로 생활 터전을 떠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최 시장이 전한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 주민은 이미 세 차례나 강제수용을 경험했다고 한다.
정수장 조성과 고속도로 건설 등 공공사업으로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이번 공공주택지구 발표로 다시 이주해야 할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은 “이렇게 또 말년에 쫓겨나야 하느냐”는 취지로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례는 이번 사업에서 주민들과의 소통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주민 입장에서는 개별 사업만 놓고 보면 각각 공익적 필요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나 가족이 여러 차례 연속해서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한다면 체감하는 부담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을 떠나 새로운 생활권을 구축하는 과정에는 금전적인 보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
주민들이 대토와 이주자단지 등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토지와 주택을 보상받고 지역을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가능하면 기존 생활권 주변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적인 선택지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다.
정부 발표 이후 주민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토지주 300여 명이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대책위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주민들을 계속 규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가 내놓은 요구도 구체적이다. 주민들은 우선 강제수용에 반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업과 관련한 신속한 정보 공개와 주민·관계기관 간 협의 창구 개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주단지 제공과 합당한 보상도 주요 요구사항이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신속한 정보 공개’와 ‘협의 창구 개설’이다.
대규모 개발사업 발표 직후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불확실성이다. 자신의 토지가 어느 범위에 포함되는지, 향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까지 거주할 수 있는지, 이주대책은 어떻게 마련되는지 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이 구체적인 절차와 정보를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전달하고 공식적인 협의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주민대책위가 협의 창구 개설을 요구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결정된 내용을 통보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 추진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안에서 향후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이주대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합당한 보상’과 함께 ‘이주단지 제공’이다. 이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공공주택지구 조성 이후에도 기존 지역이나 인근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와 맞닿아 있다.
대규모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보상을 받고도 해당 지역의 변화된 주거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면 개발의 혜택과 부담을 둘러싼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일수록 생활권 자체가 중요한 자산이다. 이웃과의 관계, 생업, 교통, 병원과 시장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반이 현재 거주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이 요구하는 이주대책의 핵심은 ‘얼마를 보상받느냐’와 함께 ‘개발 이후에도 기존 생활권에서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양주시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도 주목된다. 최 시장은 주민대책위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정부에 적극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대토와 이주자단지 조성, 정당한 보상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시장으로서 대토, 이주자단지 조성, 정당한 보상 등 우리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정부에 적극 전달하고 늘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남양주시가 주민과 정부·사업 관계기관 사이에서 실질적인 협의 역할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또 대책위가 요구하는 신속한 정보 공개와 협의 창구 마련 역시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과 지속적인 소통 구조를 마련할 경우 향후 보상과 이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주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사업 절차가 진행된다고 판단할 경우 반발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남양주 공공주택지구 문제는 앞으로 수도권에서 추진될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이 풀어야 할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족한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하고, 주민 입장에서는 수십 년 또는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
두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를 단순히 포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사업 추진 과정이다.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기존 주민의 재산권과 주거권, 생활권을 얼마나 충실히 보호하느냐에 따라 사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번 지역처럼 오랫동안 그린벨트 등 각종 규제 아래 있었던 곳이라면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주민이 정수장과 고속도로 건설 등에 이어 다시 수용 가능성에 놓였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점도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공공개발의 필요성만을 앞세우기보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개발로 인해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업의 성패는 69만평의 땅에 얼마나 많은 주택을 공급하느냐만으로 평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주민들의 의견을 사업 과정에 얼마나 반영했는지, 불가피하게 떠나야 하는 주민에게 합리적인 보상과 이주대책을 마련했는지가 또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이 새로운 주민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사업이라면, 그 땅에서 이미 오랜 세월 살아온 주민들의 삶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주민대책위가 요구하는 강제수용 반대와 신속한 정보 공개, 협의 창구 개설, 이주단지 제공, 합당한 보상에 정부와 관계기관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남양주시 역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생활 기반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끌어낼 수 있느냐가 과제로 남았다.
대규모 주택 공급이라는 국가적 필요성과 오랫동안 한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권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일. 남양주 공공주택지구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가 이제 시작됐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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