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부터 모범고용주 역할”, 노동자의 사기 진작·권익 보호 강조
[이코노미세계]최저임금만으로 노동자의 삶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까. 물가와 주거비, 교육비 등 실제 생활에 필요한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최저 수준’과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임금’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남양주시가 2027년도 생활임금을 시급 1만1820원으로 결정한 배경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임금 몇백 원을 올리는 차원을 넘어 지방정부가 ‘고용주’로서 노동자의 생활 안정에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현덕 남양주시장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27년도 남양주시 생활임금이 올해보다 3.7% 오른 시급 1만1820원으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내년도 최저임금 1만700원보다 1120원 높은 수준이다.
생활임금은 법정 최저임금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최저임금이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의 법적 하한선을 정하는 제도라면, 생활임금은 물가와 가구 생활비 등을 고려해 노동자가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정한 임금 수준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지방자치단체별 조례에 따라 적용되는 것도 특징이다.
남양주시의 이번 결정은 지방정부가 노동정책의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최 시장은 경기도와 남양주시에서 생활임금제 도입 과정에 직접 관여했던 행정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생활임금 결정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최 시장과 생활임금제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경제실장으로 근무하던 2014년 담당 부서장으로서 경기도 생활임금 조례를 처음 제정하고 시행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생활임금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후 2017년 남양주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남양주시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주도했다. 조례는 그해 6월 남양주시의회를 통과했고 2018년부터 생활임금제가 시행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차원의 생활임금 제도 도입에 참여했던 공직자가 남양주 부시장으로 옮겨 지역 차원의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이후 시장으로서 다시 생활임금 정책을 이끌게 된 셈이다.
이 때문에 남양주의 생활임금 정책은 단순한 연례 임금 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방정부 노동정책이 제도 도입 단계에서 정착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과 함께 최 시장의 행정 경험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양주시 생활임금은 시가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820여 명에게 적용된다. 시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시의 업무를 수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에도 생활임금 적용을 권고하고 있다.
직접적인 적용 대상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생활임금의 정책적 의미는 숫자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지방정부가 먼저 임금 기준을 높이고 공공부문과 관련 기관으로 이를 확산시키면서 지역 노동시장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임금제가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최저임금제의 역할과 한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노동자가 최소한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최저임금제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경제·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됐다. 최저임금이 법적인 임금 하한선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실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임금 인상 폭을 둘러싼 논란도 반복돼 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것이 생활임금이다. ‘얼마 이상 지급해야 법을 위반하지 않는가’라는 최저임금의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임금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방식이다.
남양주시가 2027년 생활임금을 법정 최저임금보다 1120원 높은 1만1820원으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생활임금제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올해보다 3.7% 오른 생활임금은 시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의 소득과 생활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지방정부가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을 단순히 법적 최저기준에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 수준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I 시대, ‘노동’ 자체가 달라진다 최 시장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임금 문제를 인공지능(AI) 시대의 노동과 소득 문제로 연결했다.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기존 일자리의 변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최저임금이 ‘노동에 대한 최소 보상’을 의미하고 생활임금이 ‘생활 가능한 수준의 노동소득’을 지향한다면, 기본소득은 노동 여부와 소득 보장의 관계를 보다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개념이다.
최 시장 역시 AI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노동환경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기본소득 논의와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기본소득은 서로 다른 제도다. 적용 대상과 재원, 정책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세 제도를 관통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사람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최소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최저임금이 있었다면, 생활비를 반영한 생활임금이 그 다음 단계의 논의로 자리 잡았다. AI와 자동화가 산업과 일자리 구조를 바꾸는 시대에는 노동과 소득의 관계 자체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의 생활임금 결정이 단순한 지방정부의 임금 인상 발표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 시장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지방정부의 ‘사용자 책임’이다. “시장도 사용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방정부 역시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기업에 노동관계 법령 준수를 요구하기에 앞서 지방정부부터 모범적인 고용주가 돼야 한다는 게 최 시장의 인식이다. 또 모범고용주로서 고용·노동 관련 법령을 준수하고 노동자들의 사기 진작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용 범위도 시청 내부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시 공직자와 시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물론 시청 업무를 수탁·대행하는 민간기관 역시 고용·노동 관련 법령을 준수하도록 지도·감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방정부의 역할을 단순한 ‘발주자’나 ‘행정기관’이 아니라 지역 노동시장의 기준을 만드는 사용자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생활임금제가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해 중요한 대목이다. 생활임금 적용 대상이 지방정부 직접 고용 노동자에게만 머문다면 지역 전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가 업무 수탁기관 등에도 생활임금 적용을 권고하는 이유도 생활임금의 취지를 공공부문과 연관된 노동현장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남양주시의 2027년 생활임금 1만1820원 확정은 하나의 숫자로 발표됐지만 그 안에는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여러 과제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생활임금의 실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가 중요하다. 현재 직접적인 적용 대상은 남양주시가 고용한 노동자 820여 명이다. 시가 공공기관과 업무 수탁기관 등에 생활임금 적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가 실제 현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확산될 수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생활임금이 제도적 상징을 넘어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용 대상과 현장 정착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과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문제다. 생활임금 수준을 높일수록 노동자의 소득은 개선되지만 지방정부와 관련 기관의 인건비 부담 역시 늘어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생활임금제를 위해서는 적정한 임금 수준과 재정 여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생활임금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동정책의 기준을 단순한 법적 최저선에만 두지 않고 노동자가 실제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 수준까지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AI와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일자리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임금과 노동, 소득 보장의 문제는 지방정부 역시 외면하기 어려운 정책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 시장이 최저임금에서 생활임금, 다시 기본소득으로 이어지는 문제의식을 제시한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남양주시의 생활임금 1만1820원은 결국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라는 숫자의 문제를 넘어선다.
지방정부가 사용자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공공부문이 지역 노동시장에 어떤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술 변화로 노동의 형태가 달라지는 시대에 시민의 기본적인 삶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2014년 경기도에서 생활임금 조례 제정에 참여하고, 2017년 남양주 부시장으로서 다시 생활임금 제도 도입을 주도했던 최현덕 시장. 그가 시장으로서 확정한 2027년 생활임금 1만1820원은 남양주 노동정책의 현재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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