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수원화성 성곽길에 세계 각국에서 온 청년 전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이 바라본 수원화성은 오래된 성곽이나 아름다운 관광지에 머물지 않았다. 정조대왕이 꿈꾼 개혁 도시의 이상과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성취, 전쟁의 상처를 딛고 문화유산을 복원한 시민의 힘이 함께 담긴 ‘살아 있는 세계유산’이었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사전 행사에 참여한 세계 각국의 청년 전문가들이 수원화성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1733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글로벌 인재들이다.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수원화성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사회 중심의 관리 방식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수원을 찾은 것이다.
이번 방문은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내년이면 등재 30주년을 맞는다. 수원시는 이번 방문을 통해 수원화성이 지닌 보편적 가치뿐 아니라 시민과 지역사회가 문화유산을 지키고 활용해 온 경험을 세계 청년 전문가들과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으며 정조대왕이 구상한 새로운 도시의 면모를 살펴봤다. 수원화성은 군사적 방어시설로 축조됐지만, 그 안에는 정치 개혁과 경제 활성화, 백성의 삶을 함께 고려했던 정조의 도시 철학이 담겨 있다.
성곽의 지형과 구조를 면밀히 살핀 참가자들은 자연환경을 활용하면서 방어 기능과 조형미를 함께 구현한 건축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수원화성 곳곳에 배치된 성문과 장대, 공심돈, 포루 등은 당시의 과학기술과 군사 건축 역량을 보여준다. 동서양의 축성 기술을 종합하고 거중기와 녹로 등 새로운 기계를 활용한 건설 과정 역시 수원화성의 역사적 가치를 뒷받침한다.
성곽길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도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옛 성곽과 현대 도시가 단절되지 않고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수원화성이 과거에 갇힌 유산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은 성곽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수원화성이 간직한 역사와 도시 경관에 감탄했다.
언어와 문화적 배경은 달랐지만 문화유산이 전하는 감동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수백 년 전 조성된 성곽이 오늘날 세계 각국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질문을 던진 것이다.
수원화성 답사는 건축물과 성곽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공공한옥 남수헌을 찾아 궁중다과와 해금 연주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전통 한옥의 공간미와 궁중다과의 맛, 해금의 깊은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수원화성의 역사는 보다 생생한 문화 경험으로 확장됐다. 눈으로 문화재를 감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통문화를 직접 듣고 맛보고 느끼는 프로그램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체험은 세계유산 활용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평가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시민과 방문객이 그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전통음악과 음식, 한옥, 지역 예술을 세계유산과 연계하면 문화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세계유산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설명보다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참가자들이 남수헌에서 경험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은 수원화성을 세계에 소개하는 동시에,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을 함께 알리는 계기가 됐다.
수원화성의 진정한 가치는 웅장한 건축물이나 아름다운 경관에만 있지 않다. 전쟁과 근대화 과정에서 훼손된 성곽을 다시 일으킨 복원 과정에는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시민의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다.
수원화성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성곽과 시설물 상당 부분이 파손됐다. 그러나 축성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복원 작업이 추진됐다. 공사에 참여한 인력과 자재, 비용, 건축 기법까지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었기에 역사적 근거에 따른 복원이 가능했다.
여기에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시민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더해졌다. 수원화성이 오늘날 세계인이 찾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행정기관의 복원 사업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참여가 있었다.
이번에 수원을 방문한 청년 전문가들이 주목한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세계유산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행정력만으로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 유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역 주민의 공감과 참여가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한 보존이 가능하다.
수원화성은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발전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성곽 안팎에는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상업지역,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 보호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주민의 일상과 지역경제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이 수원화성 관리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오늘날 세계유산 정책의 화두는 보존과 활용의 균형이다. 문화유산의 원형과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민과 관광객이 그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 증가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져야 하지만 과도한 상업화로 유산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수원시는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연계하고 있다. 성곽과 행궁, 전통시장, 공방, 한옥, 공연과 축제 등을 하나의 문화관광 생태계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주민과 상인, 예술인, 행정이 협력하면 관광의 성과가 지역사회에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도 지역사회가 세계유산을 지키고 활용하는 수원만의 사례가 소개됐다. 참가자들은 문화유산 보존이 단순한 시설 관리에 머물지 않고 주민의 삶과 문화예술, 도시정책 전반에 연결돼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
앞으로의 과제도 적지 않다. 세계유산에 대한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콘텐츠를 확충해야 한다. 청년과 외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국어 해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지역 상권과 연계한 관광 상품도 더욱 세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관광객 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만 집중하기보다 수원화성의 역사와 철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고품질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곽을 한 번 둘러보고 떠나는 관광에서 벗어나 전통문화와 지역의 생활문화, 음식, 예술을 함께 경험하는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커질 수 있다.
세계유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가들이 수원화성을 찾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앞으로 각국의 문화유산 현장과 국제기구, 연구기관 등에서 활동하며 세계유산 정책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큰 인재들이다.
이번 방문에서 형성된 수원과의 인연이 향후 국제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참가자들이 수원화성에서 배운 시민 참여형 보존과 활용 사례를 각자의 국가와 지역에 소개한다면 수원화성의 경험은 세계유산 정책을 논의하는 국제무대에서 더욱 널리 공유될 수 있다.
수원시도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도록 참가자들과 지속적인 교류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 청년 네트워크와 연계한 국제포럼이나 공동 연구, 온라인 교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면 수원화성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다.
이재준 시장은 수원화성을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고 복원한 소중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에도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 행정이 힘을 모아 보존과 활용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다며 이번 방문이 수원과 세계를 잇는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수원시는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를 계기로 국내외 관광객에게 수원화성의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특히 2027년은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이 되는 해다. 두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수원화성의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활용 가능성을 국내외에 알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등재 30주년은 지난 성과를 기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앞으로 30년 동안 수원화성을 어떻게 보존하고 시민과 함께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기후변화와 도시화, 관광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보존 전략을 마련하고 미래 세대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과 참여 기회도 넓혀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청년 전문가들이 걸었던 수원화성 성곽길은 과거와 현재, 수원과 세계를 연결하는 길이었다. 정조대왕이 꿈꾼 개혁 도시와 조선의 과학기술, 시민이 이뤄낸 복원, 지역사회가 만들어가는 문화유산의 미래가 그 길 위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수원화성은 완성된 과거가 아니다. 시민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현재이자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미래다. 등재 30주년과 수원 방문의 해를 앞둔 지금, 세계유산도시 수원의 새로운 30년이 시작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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