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도심 지하에서 진행되는 대형 철도 공사는 시민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지상에서는 차량과 보행자가 오가고, 지하에는 상하수도·통신·전력시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작은 설계 오류나 현장 관리의 빈틈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4월 11일 발생한 신안산선 복선전철 제5-2공구 공사 현장 붕괴 사고도 어느 한순간의 실수로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부실한 지반 조사에서 시작된 오류가 설계와 시공, 건설사업관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누적됐고, 결국 현장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광명시는 사고 발생 직후 자체 조사기구를 구성해 약 14개월간 사고 원인을 추적했다. 단순히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머물지 않고,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기준과 현장 안전관리, 행정제도까지 전면적으로 들여다봤다.
광명시는 16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광명시 지하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한 신안산선 공사 현장 붕괴 사고 결과를 발표했다. 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마련한 제도 개선안을 이달 말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형 국책사업의 지하 공사 과정에서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사고 현장과 가장 가까운 지방정부가 조사에 직접 나서고,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를 찾아 정부에 법령과 기준 개선을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광명시 지하사고조사위원회는 이번 사고를 설계와 시공, 건설사업관리 전 과정에 걸친 복합적인 부실이 누적된 결과로 판단했다.
첫 번째 문제는 지반 조사였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공사 구간의 지반 물성이 실제보다 높게 평가됐다. 실제 지반은 풍화토에서 풍화암 수준이었지만, 설계 과정에서는 풍화암에서 연암 수준으로 판단했다. 지반을 실제보다 단단한 것으로 본 셈이다.
지반 강도가 과대평가되면서 터널 굴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완하중은 반대로 작게 산정됐다. 이완하중은 터널을 굴착할 때 주변 지반이 느슨해지면서 구조물에 가하는 힘을 말한다. 지반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지보 구조와 핵심 부재가 감당해야 할 하중 역시 실제보다 낮게 계산될 수 있다.
2아치 터널의 핵심 부재인 중앙기둥 설계에서도 중대한 문제가 확인됐다. 구조 검토는 중앙부가 연속된 벽체인 것으로 가정해 수행했지만, 실제 설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둔 기둥식 구조가 적용됐다.
중앙기둥은 단면 0.4m×1.2m, 간격 3m로 설계됐다. 연속된 벽체와 간격을 둔 기둥은 하중을 받아내는 방식과 구조적 거동이 다르다. 그런데도 서로 다른 구조 형식을 적용해 해석과 설계가 이뤄지면서 중앙기둥에 작용하는 하중이 과소 산정됐다는 것이 조사위원회의 판단이다.
결국 지반이 실제보다 강하다는 전제와 중앙기둥이 받아야 할 하중이 실제보다 작다는 계산이 겹쳤다. 터널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출발점부터 위험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현장 시공 과정에서는 설계 당시 정한 안전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아치 터널을 굴착할 때 양쪽 막장 사이의 간격은 20m 이내로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 공사에서는 이 간격이 최대 43m까지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설계기준의 두 배를 넘는 거리다.
양쪽 터널의 굴착 진행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한쪽에서 발생하는 토압이 다른 쪽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편토압’이 커질 수 있다. 특정 방향으로 하중이 집중되면 중앙기둥을 비롯한 구조물의 부담도 증가한다.
갱문부 보강 없이 갱구부 가시설을 절단한 점도 사고 위험을 가중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터널 입구 구간은 지표면과 가깝고 외부 영향에 민감해 구조적 안정성을 각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한 보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시설이 절단되면서 현장의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확인하고 바로잡아야 할 건설사업관리 과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는 건설사업관리 단계에서 중앙기둥과 관련한 설계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고, 터널 막장면 관찰조사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설계 당시 예상한 지반과 현장에서 확인된 지반 조건이 달랐지만 이에 대한 후속 조치도 미흡했다.
중앙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부직포가 오히려 안전 확인을 어렵게 만든 문제도 드러났다. 기둥 표면이 부직포로 가려지면서 공사 중 발생한 손상을 제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호재가 핵심 부재의 이상 징후를 가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이번 사고는 지반 조사와 구조 설계, 굴착 순서, 현장 관찰, 감리 등 각각의 단계가 서로 분리된 절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앞 단계에서 발생한 오류를 다음 단계에서 찾아내고 보완해야 하지만, 여러 안전망이 잇따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위험이 확대됐다.
광명시와 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설계·시공·감리·행정 전반에 걸친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도심지 인접 구간의 시추조사 간격을 현행 100m에서 50m 이내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시추 간격이 좁아지면 구간별 지반 변화를 더욱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건물과 도로가 밀집한 도심에서는 같은 공사 구간 안에서도 지질 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조사 정밀도를 높여 설계 단계의 불확실성을 줄이자는 취지다.
2아치 터널의 중앙기둥과 필라부에 대해서는 3차원 구조해석을 의무화하도록 건의했다. 평면적인 해석만으로는 구조물과 지반 사이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힘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터널 막장면을 관찰하는 기술자의 자격 기준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조사위원회는 막장면 관찰자 자격을 지반·지질 분야 중급기술자 이상으로 높이고, 시공감리가 관찰 결과를 반드시 검토하고 확인하도록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막장면은 터널 굴착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지반의 단면이다. 설계 단계에서 예측한 지반과 실제 상태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지점이다. 균열이나 지하수 유출, 암반 상태의 변화 등을 제때 발견하면 굴착 방법과 보강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 관찰자의 전문성과 감리의 책임을 함께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현장 계측관리 기준도 더욱 세밀하게 바꿀 것을 주문했다. 현재의 일률적인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지반 특성과 터널 구조 형식에 따라 계측관리 기준을 세분화하고, 계측기 설치 이전에 이미 발생한 변위인 ‘초기 선행변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아치 터널 중앙기둥에는 응력계를 설치해 핵심 부재가 받는 힘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조물의 변형이나 하중 변화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면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해 굴착을 중단하거나 보강 조치를 할 수 있다.
지하수 유출량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도 의무화 대상으로 제안됐다. 지하수 유출량이 갑자기 늘면 지반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다. 유출량을 계속 측정하고 일정 기준을 넘을 경우 즉시 대응하도록 해야 지반 약화와 침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주요 설계변경이 이뤄질 때는 기존 지하안전평가를 다시 검토하고, 인접 공사가 지반과 구조물에 미치는 영향도 평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개별 사업장만 따로 살피는 방식으로는 여러 지하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도심의 복합적인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주청이 지정한 제3의 전문기관을 통해 구조 안정성을 검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개선안에 포함됐다. 설계·시공 주체와 독립된 기관이 구조적 위험을 다시 확인하도록 해 검증의 객관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착공 이후 지하안전조사 업체가 변경될 경우 그 내용을 관계 기관에 통보하고, 조사 과정에서 새로 확인한 자료를 지하안전평가 데이터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사업 단계별 정보가 단절되지 않도록 관리체계를 정비하자는 것이다.
광명시는 기술 기준 개선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확대하는 지하안전법 개정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현행 체계에서는 대규모 철도사업 등의 시행·승인 권한이 중앙정부나 관계 기관에 집중돼 있어, 관할 지자체가 공사 관련 정보를 적기에 확보하거나 직접적인 안전조치를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시는 관할 지자체에 긴급안전조치명령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하안전평가와 관련한 통보·명령·승인 과정에서는 관할 지자체장과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 절차를 의무화할 것도 요구했다.
대형 지하 사고가 발생해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때 해당 지자체가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도 건의안에 담겼다. 현장 여건과 주민 피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조사 과정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안상로 광명시 지하사고조사위원장 겸 한국재난안전정책연구원장은 “이번 조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사고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며 “시 차원에서 조사 후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시민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한 의미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광명시는 사고 발생 한 달여 만인 지난해 5월 12일 자체 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민간 전문가 11명과 시 시설직 국장 1명 등 모두 12명으로 꾸려졌다.
민간위원에는 지반·토질·구조 분야에서 현장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 10명과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 1명이 참여했다.
조사위원회는 약 14개월 동안 전체 회의 29회, 현장점검 4회, 관계자 청문 12회, 주민 면담 3회를 실시했다. 서류 검토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과 관계자, 주민의 의견을 다각도로 확인했다.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기술 검증도 병행했다. 드론과 라이다(LiDAR)를 활용해 사고 현장을 측량하고, 현장 구조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3차원 모델을 제작했다. 터널 구조 안정성 해석과 지반 안정성 검토도 별도로 수행해 조사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광명시는 사고 조사와 별도로 지역의 지하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광명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하안전관리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도 자체적으로 실시해 지표 아래의 공동이나 지반 이상 여부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철도사업과 공공주택지구 조성 등 대규모 지하개발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 조직인 ‘지하안전관리팀’도 신설했다. 앞으로 지하안전전문관을 채용하고 지하안전자문단을 구성해 행정의 전문성을 높일 계획이다.
다만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만으로 안전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위원회가 제시한 개선안이 실제 설계기준과 공사 현장의 작업 절차, 감리자의 확인 의무로 이어져야 한다. 이상 징후가 발견됐을 때 공사를 멈추고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도 분명해져야 한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시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시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며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지하안전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안전관리 제도를 더욱 촘촘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안산선 공사 현장 붕괴 사고에 대한 조사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은 이제 시작 단계다. 광명시가 제출할 개선안이 정부의 설계·시공 기준과 지하안전법 개정으로 이어질지가 다음 과제다.
도시의 지하는 시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는 지상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여러 겹의 부실을 다시 현장의 여러 겹의 안전망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14개월간의 조사 결과가 남긴 가장 무거운 숙제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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