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기록적인 폭염이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농업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상시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촌에서는 한낮의 불볕더위에도 파종과 수확, 방제, 시설물 관리 등 농작업을 멈추기 어렵다. 특히 고령 농업인과 장시간 야외에서 일하는 농업인은 온열질환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폭염이 더는 일시적인 기상 현상이 아니라 농업 현장의 구조적 위험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경기도의회가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과 지원을 제도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경기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김성태 의원은 6일 경기도농업기술원을 방문해 농업 현안을 논의하고, 농업인의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경기도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대표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폭염·가뭄 대처 상황 점검회의에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참석해 도내 대응 상황을 점검한 가운데, 경기도의회 차원에서도 농업 현장의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추진된 것이다.
이번 조례안의 핵심은 폭염이 닥칠 때마다 임시 대책을 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지원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데 있다. 기후위기로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농업인의 안전을 개인의 주의나 현장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농촌의 폭염 피해는 일반적인 야외 활동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성격이 다르다. 농업인은 작물의 생육 시기와 기상 여건에 맞춰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폭염특보가 내려져도 작업을 완전히 중단하기 어렵다.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 밀폐되거나 열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공간에서는 체감온도가 외부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농촌 고령화 역시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다. 고령자는 젊은 층보다 체온 조절 능력과 갈증을 인지하는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온열질환이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혼자 농작업을 하다 쓰러지면 구조나 응급조치가 늦어질 우려도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농업인 폭염 대책은 폭염특보가 발효된 뒤 행동 요령을 알리거나 농작업 자제를 권고하는 방식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는 예방교육과 안전 물품 지원, 작업환경 개선, 취약 농업인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근거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돼 왔다.
김 의원이 준비하는 조례안은 이러한 현장의 요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농업인을 온열질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책무와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면 매년 폭염 상황에 따라 사업을 임시로 편성하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김 의원은 “폭염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업인에게 필요한 예방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고령 농업인을 비롯해 야외에서 장시간 작업하는 농업인들이 폭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대책과 필요한 지원사업을 조례에 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현재 시·군 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해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활동과 안전관리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업인에게 폭염 시 행동 요령을 안내하고 안전한 농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등 현장 중심의 예방활동을 벌이는 방식이다.
다만 행정기관이 시행하는 사업이 안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분명한 법적·제도적 근거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담당 부서의 의지나 매년 달라지는 예산 여건에만 의존하면 사업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례가 제정되면 기존 예방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할 근거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 현장 수요를 반영한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언적 규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 농업인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체계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농업기술원 관계자들은 이날 김 의원에게 시·군 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해 추진 중인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활동과 안전관리 현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농촌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항이 조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김 의원도 농업기술원의 현장 의견을 조례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기존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뿐 아니라 현장에서 요구되는 신규 사업이 예산 편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조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방교육과 홍보를 넘어 농업 현장의 작업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업인의 연령과 건강 상태, 작목별 작업 시간, 비닐하우스·축사 등 작업 공간의 특성이 서로 다른 만큼 획일적인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군 농업기술센터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농업기술센터는 지역 농업인의 작업환경과 영농 형태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관이다. 경기도가 기본계획과 지원 기준을 마련하고 시·군이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눈다면 정책의 현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조례안 추진은 농업정책의 중심을 생산성과 소득에서 농업인의 생명과 안전으로 넓힌다는 의미도 지닌다. 그동안 농업 분야의 폭염 대책은 농작물과 가축 피해를 줄이는 데 무게가 실렸다. 농업 생산 기반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반을 유지하는 농업인의 안전이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면서 농업 현장의 위험도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폭염은 농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고 가축 폐사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농업인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농가 소득 감소와 복구비 부담이 겹치면 농촌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촌에서는 농업인 한 사람의 건강 악화가 개별 농가를 넘어 지역 농업의 생산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농업인 안전정책을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농업과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따라서 온열질환 예방 조례는 피해가 발생한 뒤 지원하는 사후 대책보다 위험을 미리 줄이는 예방정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폭염 위험시간대 작업 조정,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 응급상황 대응체계 구축, 취약 농업인 관리 등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체계도 필요하다. 예방교육 횟수나 홍보물 배포량과 같은 단순 실적보다 실제 온열질환 발생 감소와 농업인의 작업환경 개선 여부를 살펴야 한다. 현장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해 사업을 보완하는 절차가 마련돼야 조례가 형식적인 선언에 머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 의원은 이날 농업인 온열질환 문제와 함께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예산 감소도 짚었다. 농업기술원의 본예산이 전년보다 약 60억원 줄어 전체 예산의 1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이다.
농업기술원은 신품종 개발과 농업기술 연구, 병해충 대응, 농업인 교육,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한 기술 보급 등 경기도 농업의 기반을 담당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할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확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기후위기로 농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구개발과 기술 보급을 담당하는 기관의 예산이 줄어든 것은 정책 방향과 재정 투입이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농업의 위기에 대응할 핵심 기관의 재정 기반을 축소한다면 정책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농업기술원은 신품종 개발부터 농업기술 연구, 시·군 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한 현장 보급까지 경기도 농업의 기반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며 “기후위기와 농촌 고령화 등으로 농업 현장의 어려움이 커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예산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기술원의 예산 감소는 농업인 온열질환 예방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례를 만들어 지원 근거를 마련하더라도 실제 사업을 수행할 기관의 인력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례 제정과 예산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조례에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내용을 담느냐다. 지원 주체와 대상, 사업 범위, 시·군 및 관련 기관과의 협력체계가 명확해야 한다.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근거와 사업 추진 결과를 점검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농업기술원과 시·군 농업기술센터가 이미 시행 중인 사업을 면밀하게 분석해 중복은 줄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농업인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지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현장 의견을 충분히 듣는 과정도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폭염 대책이 특정 기간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 폭염이 시작되기 전에 취약 농업인을 파악하고 예방교육과 안전점검을 마쳐야 한다. 폭염 기간에는 신속한 정보 전달과 현장 대응이 이뤄져야 하며, 이후에는 피해와 대응 결과를 분석해 다음 연도 정책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김 의원은 “농업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조례와 예산으로 실제 농업인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농업인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농업기술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예산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폭염은 이제 예외적인 재난이 아니라 농업인이 해마다 마주해야 하는 일상적 위험이 됐다. 농업인의 희생과 개인적인 주의에 기대는 대응은 한계에 이르렀다. 경기도의회가 추진하는 조례가 일회성 대책을 넘어 예방과 지원, 연구와 예산을 연결하는 제도적 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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