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산을 가로로 걷는다니 참 멋들어지는구나. 이현재의 짧은 소회는 최근 개통된 검단산 둘레길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낸다. 하남시는 22일, 검단산 2.7km 구간(현충탑 입구–정심사 뒤–미군부대 인접 구간)을 잇는 새로운 둘레길을 개통했다.
이 소식은 하남시장 개인 SNS를 통해 먼저 알려졌고, 시민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가파른 산을 오르지 않아도 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번 둘레길은 전통적인 ‘정상 등반형’ 등산로와는 결이 다르다. 위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산허리를 따라 ‘가로로’ 걷는 길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동선의 변화가 아니다. 하남시가 산을 대하는 관점, 그리고 공공 녹지의 이용 대상을 어떻게 확장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검단산은 하남을 대표하는 명산이지만, 그만큼 경사가 급하다.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노약자나 초보자, 무릎 부담이 큰 시민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이번에 개통된 둘레길은 이런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현충탑 입구에서 시작해 정심사 뒤편을 지나 미군부대 인접 구간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급경사를 최소화하고, 자연 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하남시는 이를 ‘친환경 등산코스’로 규정한다. 실제로 길을 걷다 보면, 정상 정복의 긴장감 대신 숲과 능선을 병풍처럼 감상하는 여유가 먼저 다가온다.
이번 둘레길 조성은 단순한 산책로 확충 사업으로만 보기 어렵다. 도시 행정의 시선에서 보면, 이는 공공 여가 인프라의 재설계에 가깝다. 기존 등산로가 특정 체력과 경험을 요구했다면, 둘레길은 연령과 체력의 장벽을 낮춘다. 즉, 더 많은 시민을 산으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오르지 않아도 되는 산길’은 정책적 의미를 갖는다. 무릎과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숲의 효용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은, 건강·복지·환경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등산 문화 역시 변하고 있다. 한때 정상 인증 사진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걷는 과정 자체’가 가치로 떠오른다. 검단산 둘레길은 이런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한 사례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산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이현재 시장이 SNS에서 밝힌 개인적 감상은, 행정 수장의 시선이 정책 언어가 아닌 일상 언어로 시민에게 전달됐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가로로 걷는 산”이라는 표현은 복잡한 행정 설명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과제도 남는다. 둘레길이 인기를 끌수록 이용객 증가에 따른 훼손 가능성도 커진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용 관리와 자연 보전이 병행되지 않으면 길은 빠르게 닳는다. 특히 미군부대 인접 구간 등 민감한 공간에서는 안전과 환경 관리가 동시에 요구된다.
검단산 둘레길은 거창한 개발 사업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가 자연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얼마나 섬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르지 않아도 괜찮은 산’, ‘힘들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자연’은 결국 공공성의 확장이다.
하남시가 이번 둘레길을 시작으로 어떤 녹지 정책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시도. 검단산 둘레길은 그 첫 문장에 해당한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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