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3월 새 학기는 아이들 이름 하나 더 외우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서류가 아니라 학생에게 집중해야 한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 현장의 행정 부담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임 교육감은 3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에듀테크 하나를 쓰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서류를 만들고, 자주 열리지도 않는 회의 일정을 기다리는 현실은 행정력 낭비”라며 “탁상행정을 멈추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학습관리시스템(LMS), 온라인 평가 도구 등 에듀테크 활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실에서 이를 적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행정 절차가 적지 않다. 특히 소프트웨어 하나를 도입할 때마다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현행 구조가 대표적이다.
현장 교사들은 “교육적 효과와 무관한 행정 절차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토로한다. 학운위 심의 자료를 준비하는 데만 수일이 걸리고, 회의 일정이 맞지 않으면 수업 시기를 놓치는 일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보안성과 개인정보 보호 등 전문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까지 학교 단위에서 책임지게 하는 방식 역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임 교육감은 이러한 구조가 학교운영위원회 본래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학운위는 학생과 교사가 교육과 학습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구이지, 전문 소프트웨어의 기술·보안 검증까지 담당하는 조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보안 검토가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매번 심의하도록 하는 구조는 학운위 위원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과도한 부담”이라며 “행정이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문제를 개별 교육청 차원의 개선 과제로 두지 않고, 제도 전반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최근 열린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에서 에듀테크 심의 간소화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것이다.
임 교육감은 “그 어떤 안건보다도 교사들이 체감하는 ‘행정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며 “학교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교육청의 책무”라고 밝혔다.
협의회 결과, 전국 교육감들은 단계적 개선 방안에 뜻을 모았다. 우선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에듀테크에 대해서는 학운위 심의를 대폭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에듀집’ 등 공공 검증을 거친 플랫폼이 대표적 대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률 개정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안성과 교육적 적합성을 검증한 자료에 대해서는 학교 자체 심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개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임 교육감은 “에듀테크는 교육을 돕는 도구이지, 교사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거추장스러운 심의의 굴레를 벗겨내고 3월의 학교를 다시 교사와 아이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강조했다.
학교 현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경기도 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같은 프로그램을 쓰기 위해 매년 비슷한 심의 자료를 반복 작성하는 일이 가장 비효율적이었다”며 “검증된 도구라면 행정 절차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심의 간소화와 함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시스템 장애 발생 시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듀테크 심의 완화는 단일 정책처럼 보이지만, 그 파급력은 작지 않다. 학교 행정 전반을 ‘지원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교무·행정 분리와 업무 경감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의 중심은 교실이라는 원칙, 행정은 그 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선언이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 학기를 맞는 학교 현장에 ‘서류가 아닌 수업의 시간’이 돌아올 수 있을지, 이번 정책 변화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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