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다.” 이 진부한 구호가 수원시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닌, 청소년들이 직접 제안하고 토론한 아이디어가 조례와 정책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10일 공포된 ‘수원시 청소년의 건전한 사회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는 그 대표적 사례다. 출발점은 시청 관계자나 전문가가 아닌, 청소년의회 청소년인권위원회의 제안이었다.
2024년 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 청소년의원 7명은 일상 속 문제의식을 정책으로 연결했다. 주변에서 도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또래가 많다는 점에 착안, 예방 교육의 의무화를 제안한 것이다. 기존 조례의 빈틈을 파고든 이 아이디어는 정종윤 시의원을 통해 현실화됐다. 결과적으로 조례에 도박·마약·디지털 성범죄 등 청소년 유해환경 예방 교육이 명문화됐다.
매탄고 2학년 조활언 군은 “청소년의회의 제안이 실제로 조례에 반영돼, 목소리가 헛되지 않음을 체감했다”며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청소년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상징적 장면이었다.
조례 개정뿐 아니라 환경 정책에도 청소년의 의견이 반영됐다. 지난해 체육환경위원회 청소년의원 9명은 ‘깨끗한 수원’을 위해 투명 페트병 무인 회수기 확대를 제안했다. 해당 제안은 청소자원과의 검토를 거쳐 올해 권선청소년청년센터에 실제 설치로 이어졌다.
이처럼 생활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연결되면서, 청소년 참여의 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원시 청소년의회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2018년부터 조례에 근거해 제도화된 참여 기구로, 매년 50명 이내 청소년이 선발돼 활동한다. 올해 2025년 의회에는 총 44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수원시의회와 동일하게 5개 상임위원회 체제를 갖췄다. 장애·이주 배경 청소년 등 사회적 배려 대상의 참여도 확대해 목소리의 다양성을 꾀했다.
청소년의원들은 위촉장을 받은 뒤 워크숍, 상임위 회의, 토론을 거쳐 정책을 발의한다. 지난 2일 열린 제1차 임시회에서는 13건의 안건 중 8건이 가결됐다. ‘학생 참여 예산제’, ‘개인형 이동장치 면허 확인 강화’, ‘버스 내 음성안내 도입’, ‘어린이보호차량 현수막 금지’, ‘버스정류장 지붕 그린루프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7년간 30건에 이르는 정책 제안으로 축적됐다. 2018년 ‘지역경제와 함께하는 청소년 활동’, 2022년 ‘수원페이로 버스 탄다’, 2024년 ‘청소년 체육 활성화 정책’ 등도 모두 청소년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수원시는 청소년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해 청소년의회 외에도 다채로운 루트를 마련했다. 수원청소년청년재단이 운영하는 청소년참여위원회, 교육지원청 산하 청소년교육의회 등이 그것이다. 세 기구를 합치면 약 90명의 청소년이 정기적으로 정책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정책 제안대회’도 매년 열린다. 2022년 시작된 이 대회는 청소년 아이디어를 제도권에 연결하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올해 7월 열린 대회에서는 ‘똑!똑한 수원형 청소년 등교 지원 정책’이 대상을 받았다. 대중교통 사각지대 청소년을 위해 ‘똑버스’를 확대 운영하자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정책 참여의 제도화를 “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 평가한다. 청소년이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한 청소년 정책 연구자는 “청소년 의회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실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학교 밖 민주주의 교실”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수원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은정(46) 씨는 “아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믿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편, 청소년 참여가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 수원시. 이 흐름은 청소년이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넘어서, 오늘날 당당한 시민으로서 정책을 만드는 주체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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