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9월 22일 충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20년 넘게 조리실에서 일해온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점심을 책임지던 노동자가 병을 진단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폐암으로 사망한 학교 급식노동자는 15명에 달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대응은 더디고, 현장의 절규는 여전히 메아리로 남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이번에 숨진 노동자는 선암 4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방사선 치료 한 달 만에 세상을 등졌다. 동료 노동자들은 분향소를 차려 추모했으나, 경기도교육청은 여러 차례 이를 강제로 철거해 논란을 키웠다.
유호준 경기도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학교 급식실에서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을 멈춰 세워야 한다”며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그리고 “임태희 교육감은 과거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한 전력이 있다”며 이번에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에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지난 8월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폐암으로 숨진 故 이영미 조리실무사를 공무상 재해에 따른 순직으로 인정했다. 이는 급식노동자의 폐암 사망이 산업재해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례였다. 그러나 교육청과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환기시설 개선이나 정기 검진 등 근본적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동료 노동자들은 “더 이상 동료의 죽음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며 전면적인 폐CT 검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은 2027년까지 환기시설 개선을 완료하겠다는 계획만을 내놓은 상태다.
유호준 의원은 교육청의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청은 2,244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환기시설 개선을 완료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동안 노동자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올해 상반기 교육청이 재정안정화기금으로 적립한 예산은 3,066억 원에 달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육감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것”이라며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한 교육청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동계는 환기시설 개선이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급식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이 이미 다수의 피해를 낳은 만큼, 학교급식실을 산업안전보건법상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아가 학교급식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 의원 역시 “이 문제는 단순히 시설 문제를 넘어 구조적·제도적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할 사안”이라며 경기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등 관련 단체와 협력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업의학 전문의인 A 교수는 “급식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름 연기와 미세먼지는 장기간 노출될 경우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단기적 검사와 장기적 환기 시스템 개선, 제도적 관리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다. 노동자의 생명권은 비용 논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교육청과 정부가 실질적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또 다른 노동자의 이름이 분향소에 걸릴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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