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교과서는 불변의 진리도, 닫힌 경전도 아니다. 경기교육의 수장이 교과서를 향해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교실의 풍경과 수업의 방식, 더 나아가 공교육의 작동 원리를 다시 묻는 문제 제기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살아 있는 교과서’를 화두로 꺼내 들면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국가 주도 교과서 체제에 변화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
임 교육감은 1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말해 온 정답이 미래에도 정답일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교과서를 바라보는 기존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지식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사회 변화 주기가 짧아진 시대, 교과서가 ‘고정된 기준’으로 기능하는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다.
지금의 교과서 제도는 국가가 내용을 정하고, 학교 현장은 이를 전달하는 구조에 가깝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이미 수업 자료를 재구성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며 교과서를 ‘보완 교재’로 사용하는 현실에 익숙하다.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누적돼 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안한 변화의 핵심은 ‘국가 주도 하향식 교과서’에서 ‘교사 중심 상향식 교과서’로의 전환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개념이 바로 ‘열린 교과서’다.
새로운 구상에서 교사는 더 이상 교과서의 단순한 사용자에 머물지 않는다. 교육청은 교사를 콘텐츠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에듀 프로슈머(Edu-Prosumer)’로 규정한다. 교사가 직접 개발한 수업 자료와 콘텐츠가 교과서의 일부가 되고, 이는 다른 학교와 교실로 확산되는 구조다.
임 교육감은 “선생님이 개발한 콘텐츠에는 확실한 보상을 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는 단순한 명예나 활용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재정적 보상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시한 또 하나의 축은 ‘자율인증형 교과용 도서 발행제도’다. 교사나 학교, 교육 공동체가 교과 콘텐츠를 제작하면 국가(또는 교육청)는 최소 기준을 설정하고 사후 관리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가가 모든 내용을 통제하던 기존 검정·인정 체제와는 결이 다르다. 공공성과 품질은 국가가 책임지되, 내용의 다양성과 현장성은 교사에게 맡기겠다는 구조다.
현장 교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변화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실행 단계에서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중학교 교사는 “현실적으로 이미 많은 교사들이 교과서를 재구성해 수업하고 있다”며 “제도가 이를 따라온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콘텐츠 제작에 따른 업무 부담과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전문가들 역시 보상 체계와 품질 관리가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라고 본다. 한 교육정책 연구자는 “열린 교과서는 자칫하면 학교·지역 간 교육 격차를 키울 위험도 있다”며 “최소 기준과 공공성 확보 장치가 촘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구상은 단순한 교과서 개편을 넘어, 공교육의 철학을 묻는 문제로 확장된다. 교실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다.
임 교육감은 “선생님이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국가는 사후 관리로 공공성을 보장하는 체계”를 강조한다. 이는 통제 중심의 공교육에서 신뢰 기반 공교육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경기도교육청의 시도는 전국 교육 정책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교과서 제도는 국가 교육과정과 맞물린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성공할 경우 다른 시·도 교육청과 중앙정부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에서 갈린다. 교사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보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품질 관리와 책임 소재는 어디에 둘지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임 교육감의 발언은 분명하다. “교과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교육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교과서부터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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