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경기도가 지난해 발생한 화성 전지공장 화재참사 1주기를 맞아, 사고의 진상과 그 이후의 대응, 제도적 변화 과정을 담은 종합보고서 "눈물까지 통역해 달라 –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사고, 그 기록과 과제"를 오는 6월 24일 발간한다. 이번 보고서는 단순한 사고 백서를 넘어, 피해자 중심의 시선으로 재난을 성찰하고 변화의 동력을 만든 기록물로 주목된다.
이 보고서는 경기도가 이 사고를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며, 산업 현장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이주노동자의 제도적 배제라는 구조적 원인을 밝혀낸 데서 출발했다. 서울대 백도명 명예교수(조사자문위원장)는 이를 “위험의 외주화·이주화가 누적돼 발생한 필연적 비극”이라 정의했다.
보고서는 1부 ‘경기도의 대응’, 2부 ‘자문위원회의 분석과 권고’로 구성됐다. 1부에는 사고 직후부터의 경기도 대응 과정을 정리했다. CCTV 분석을 바탕으로 한 재난 대응 과정, 소방본부의 실험적 재현, 그리고 긴급생계비·의료·심리·통역 등 다각도의 피해자 지원 방안이 시간순으로 서술됐다.
특히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강조한 “이주노동자도 경기도민”이라는 선언은, 기존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넘어선 지원을 가능케 한 전환점이 됐다. 경기도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외국인 유가족에게도 차별 없는 지원을 시행하며, 사회적 재난 대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기존 행정 백서의 딱딱한 형식을 넘어, 현장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구술형 기록으로 담아내 ‘기억의 기록물’로 완성됐다.
보고서 2부는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조사 및 회복 자문위원회'의 분석과 제언을 바탕으로 한다. 이민사회 정책, 노동 안전 체계 개선, 피해자 위로금 제도화 등 실질적으로 수용된 정책 내용과 향후 과제들이 포함됐다.
첫째, 경기도는 기존의 ‘이주노동자 보호정책’을 넘어 ‘이민사회 정책’으로 확대했다. 오는 7월에는 ‘이민사회통합지원센터’가 문을 열고, 노동·정착·차별예방·안전 등 4대 분야에서 총 33개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둘째, 재난 대응 방식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경기도는 기존의 법적 틀을 넘어 전국 최초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피해자와 유가족 전원에게 긴급생계비를 지급했다. 이후에는 중경상 피해자까지 지원하는 ‘경기도형 재난위로금’을 제도화하며, 사회적 참사에 대한 새로운 보상의 틀을 제시했다.
셋째, 산업안전 정책의 구조적 전환도 추진 중이다.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도입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안전지킴이’ 인력을 확대하는 한편, 산재율을 반영한 정책 인센티브제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일정 부분 근로감독권을 공유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는 이번 보고서를 단지 기록이 아닌 ‘사회적 변화의 씨앗’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동연 지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기도가 구조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이 보고서가 사회적 재난의 예방과 대응 매뉴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경기도 누리집에 전자책 형태로 게시되며, 도서관, 공공기관, 이주민 지원기관에는 무상 배포된다. 7월 중순부터는 전국 주요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도 유료로 구매할 수 있다.
경기도는 6월 넷째 주를 ‘노동안전주간’으로 지정하고 산업재해 예방 및 추모 캠페인을 펼친다. 24일에는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1주기 추모제가 화재 현장에서 열리고, 25일에는 대형 물류창고 대상 안전점검과 현장 컨설팅이 예정되어 있다.
백도명 명예교수는 “이 보고서는 지방정부가 정책 이전에 사람의 목소리를 우선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사회적 재난 대응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유가족은 “이주노동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할 줄 알았다”며 “이번 보고서를 보며,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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