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수행평가 준비하느라 새벽 2시에 잠들고, 다시 6시에 일어납니다. 시험보다 더 힘들어요.”
경기도 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채린(17) 양은 수행평가 기간마다 겪는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학생·학부모·교사 모두의 고통을 끝내고, AI 시대에 걸맞은 평가 체계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며 수행평가의 전면 재구조화를 공식화했다.
임 교육감은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학생, 부모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 준비부터 채점까지 감당해야 하는 교사의 부담은 교육이 아니라 고통”이라며 “암기식, 학원찬스식, 융단폭격식 ‘수행지옥’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이미 과제형 평가를 지양하고, 수업 시간 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여전했다. 학생들은 결국 사교육에 기대거나 부모의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교육의 공정성과 본질이 무너지는 사례가 반복돼왔다.
특히 ‘학생 과제’라는 이름 아래, 학부모가 대신 PPT를 만들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원시 영통구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 김지연(45) 씨는 “아이 숙제라는 명목으로 매주 밤마다 제가 프린트물까지 챙기고 자료를 찾아야 했던 적도 있다”며 “이게 정말 학생 평가인지, 부모 능력 평가인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임 교육감은 “AI 기술을 활용한 개별 맞춤형 평가, 과정 중심 평가 등 미래형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시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평가가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의 이러한 정책은 전국 단위로 확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서울, 충북, 대전 등 일부 시·도교육청도 수행평가 개선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다. 특히 고등학교 수준에서 수행평가의 내신 반영 방식이 입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는 전국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평가 체계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변화가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교육학과 이민정 교수는 “AI를 활용한 평가가 단순히 기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흐르면 오히려 학습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며 “학생 참여와 성찰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적 설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선 교사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수행평가의 기본 틀은 좋은 제도이지만, 관리 체계와 교사 연수가 미비한 상황에서 무조건 손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정책 설계부터 현장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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