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고향사랑기부금 누적 1천억 원을 넘어선 날,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발달장애인과 자원봉사자, 보호자들이 함께 오른 한라산 등반의 기록이었다. 안성시 고향사랑기부제가 만들어낸 이 특별한 여정은 ‘기부금의 쓰임’이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보라 안성시장은 17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향사랑기부금이 1천억 원을 넘긴 뜻깊은 날”이라며, 안성시에서 열린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행사를 소개했다. 단순한 기부 성과 보고가 아니라, 기부금이 시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번 행사는 2025년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금으로 추진됐다. 발달장애인과 자원봉사자, 보호자 등 50여 명이 한라산 등반에 도전했고, 그 전 과정은 선발부터 훈련, 등반까지 촘촘하게 기록됐다.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수개월간의 준비와 협업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였다.
등반 자체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 순간은, 그 기록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였다. 완성된 영상은 영화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등반에 참여했던 장애인과 보호자, 자원봉사자, 장애인체육회 관계자, 그리고 고향사랑기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 시장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스크린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 등반대원들은 환호했고, 보호자들은 “아들 덕분에 제주도도 가보고 영화에도 출연한다”며 웃음을 보였다.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순간이, ‘기부’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현실이 됐다.
이번 한라산 등반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참여 구조에 있다. 안성시에 위치한 한경대학교 스포츠학과 학생들이 멘토로 참여해 훈련부터 실제 등반까지 함께했다. 체력 훈련, 안전 지도, 정서적 교류까지 학생들의 역할은 단순 보조를 넘어섰다.
또한 전 과정은 동아방송예술대학교가 촬영을 맡아 전문 영상으로 기록됐다. 이는 장애인 복지 프로그램을 일회성 행사로 소비하지 않고,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 시장은 “학생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고향사랑기부제가 청년 교육과 지역 대학의 사회적 역할까지 아우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행사 말미에 오간 대화는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보여준다. “내년에는 어디를 갈까요? 백두산 한번 갈까요?” “꼭 백두산 가고 싶어요.”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대화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미래의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복지의 목표가 보호에 머무르지 않고, 꿈과 선택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제도 도입 초기 ‘지방재정 보완 수단’이라는 한계를 지적받아왔다. 그러나 안성시 사례는 기부금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사회적 가치가, 현장에서 구체적인 장면으로 구현됐다.
전국 각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금 유치 경쟁에 나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제 ‘얼마를 모았는가’보다 ‘어디에, 어떻게 썼는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성시의 한라산 등반 프로젝트는 그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장애인, 보호자, 자원봉사자, 대학생, 기부자가 한 프로젝트 안에서 연결됐고, 그 결과는 감동과 공감이라는 사회적 자산으로 남았다. 고향사랑기부금 1천억 원이라는 숫자는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안성시가 던진 질문은 명확하다. 기부는 단순한 재원이 아니라, 지역이 함께 꿈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가. 한라산 정상에서 시작된 이 실험의 다음 행선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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